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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대희년 전문가 의견-김소구 소장(한국지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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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름다운 지구 위에 살고 있다.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을 한 아름다운 꽃과 풍요한 열매 곡식…. 태양계 속 지구 위치만 보더라도 지구는 9개의 행성 중 태양으로부터 가장 알맞게 떨어져 태양을 중심으로 충돌하지 않고 정확하게 궤도운동을 한다. 적절한 온도변화 24시간 자전 365¼일주기 공전 등은 생물이 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 준다. 물론 수성 금성 화성도 지구와 같이 밀도가 높고 암석형의 지구형 행성(terrestrial
lanet)이지만 타행성은 심한 온도차와 공기 물 부족으로 생물체의 존재가 불가능하다. 목성 등 여타 행성은 기체형이며 밀도가 작은 목성형 행성(jovian
lanet)은 더욱 생물체의 존재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들 9개의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서로 충돌하지 않고 정확한 궤도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시작과 운동은 과연 과학적으로 정확한 답변을 끌어낼 수 있을까?

이 세상 만물에는 모두 제작자(maker)가 있다. 높은 수준의 제작물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지식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아름다운 지구와 태양계 운동의 조물주(Maker)는 누구일까? 여기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설명해야 되기 때문에 전지전능한 하느님(신앙)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많은 과학자들이 창조론보다 진화론에 기울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앙은 무한성과 절대성(infinity and absolute)의 진리인 반면 과학은 유한한 시·공간 속에서 찾아야 하는 유한성과 객관적 진리(finite and objective)다.
요즘 우리는 통신 전자 에너지 기계 생명공학 등 과학의 혜택을 너무나 많이 받고 있다. 반면에 환경파괴 핵무기 제조 유전자 조작 등 인간의 양심을 어기는 과학지식도 많이 도출되고 있다. 그렇게 윤리를 잃어버린 과학은 결국 무서운 결과를 초래해왔다. 2차대전 말기 1945년 8월6일과 2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2만t의 원폭은 과학의 윤리성을 잃어버린 매우 무책임한 행위였다. 이 세상의 많은 재해는 불가항력적인 것도 있지만 인간의 무지와 무책임에서도 온다.

예컨대 얼마전 대지진 재앙을 일으킨 터키 대지진(’99.8.17) 대만 대지진( 99.9.21) 등은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자연 재해였지만 또한 인간의 과학기술의 윤리적 도덕적 책임과도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서 신앙과 과학이 상충하는 것 같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게 된다. 과학이 참으로 인간발전에 기여하려면 신앙이 제시하는 양심과 윤리법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학기술의 발전이 신앙의 영역인 윤리적·도덕적 가치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결코 인간 발전에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태 25 29) 는 성서구절이 생각난다. 너무나 유명한 주인과 하인과의 관계 비유다. 5달란트를 10달란트로 늘린 하인은 더 큰 대우를 받았고 1달란트를 그대로 보관한 하인은 냉대를 받았다. 필자는 이것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을 놓고 생각해보고 싶다.

누구든지 재능을 잘 활용하여 남에게 도움을 주면 계속 재능을 살릴 기회를 더 발휘해 삶의 질을 높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법칙에 끌려가기(1달란트를 그대로 둠)보다는 끊임없이 자연의 법칙에 겸허히 도전하여 윤리적 도덕적 바탕을 기초로 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될 것이다(10달란트로 늘림).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Nature)과 무서운 자연의 힘 즉 질서(order)와 무질서(chaos)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과학과 신앙은 바늘과 실의 관계와 같이 우리 일상 생활에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과학과 신앙(종교)은 서로 상충되면서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학과 신앙은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서로 만나게 된다. 과학은 우주 자연의 진리(법칙 원리)를 추구한다면 신앙은 인생(삶)의 진리를 추구한다.

과학은 추구하는 방법에서 수량화 실험과 관측 등을 통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연역적 방법을 이용하는 반면 신앙은 절대자(The Absolute)에 대한 깊은 믿음에 기초를 두고 선과 악과 같은 인간의 양심과 윤리의 방법을 통해서 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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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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