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고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정확한 역사적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토대로 신학적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 엄밀한 역사 분석을 통해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를 충분히 파악할 때만 그것이 복음에 부합되는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를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해석하는 주체와 해석되는 과거 대상간의 복잡한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해석하는 주체와 해석되는 대상이 서로 이질적이라는 점이 주지되어야 한다. 과거의 사건이나 말은 ‘과거’의 것이므로 현재의 틀에 완전하게 끌어들일 수 없다. 따라서 그것들이 우리 시대에 제기하는 도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환경 등에 비추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이용하여 역사 ―비판적 조사 방법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둘째 해석하는 주체와 해석되는 대상의 공통점을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과거와 현재간에 아무런 끈도 커뮤니케이션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끈은 인간은 누구나 복잡한 역사적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 관계를 이어주는 매체가 바로 언어다. 따라서 과거사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구 조사의 동기와 결과 작업이 이루어지는 상황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에 대한 해석 등을 고려해야 한다.
끝으로 알고 평가하려는 노력을 통해 해석 주체와 해석 대상간의 삼투작용(지평의 융합)이 일어나는데 바로 여기에서 올바른 이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역사적 판단과 신학적 판단을 통합하는 과정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과거와 현재간의 차이점들에 가장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과거의 잘못들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시대가 다르며 교회가 행동하였던 사회 문화적인 시점이 다르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특정한 한 시대와 사회에 적용되는 패러다임과 판단으로 다른 시대와 사회를 평가한다면 잘못될 수도 있고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역사적 판단과 신학적 판단을 서로 연관짓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간의 끈이 단지 현재의 관심사 모든 인간이 역사에 속해 있다는 공통된 사실 그리고 언어적 매개에 의해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행위와 계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시공간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친교의 공동체인 교회는 시대를 초월하여 작용하는 초자연적 측면을 지니는 것이다.
다양한 역사적 상황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친교가 지니는 이러한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토대로 인해 신앙인들은 교회의 과거를 해석하면서 이것이 현재를 위해서도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확인한다. 해석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과거와의 만남은 현재를 위해서도 특별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대한 교회의 해석이 자칫하면 호교론적이고 편향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과거의 사건들과 진술들을 해석하고 이 해석이 올바른지를 평가하는 해석학적 작업이 더욱더 필요한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제삼천년기’(제35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정확한 역사적 판단은 그 시대의 문화적 조건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잘못을 경감시켜 주는 요인들을 고려한다고 해서 교회가 교회의 면모를 더럽힌 자신의 수많은 자녀들의 나약함에 대하여 깊이 사과해야 하는 의무에서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역사의 진리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잘못이라고 확인된 것이 있으면 그 잘못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음 장에서는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