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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평화-노동자들의 대희년 심층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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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으로 인한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근로자들이 실업자가 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노동시간이 정규직원과 같거나 더 많으면서도 월급은 정규직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데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매일매일을 지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 생계수단인 직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갖은 비인격적 대우도 참아야 한다. 이들에게는 복리후생이나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남의 나라얘기다.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는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임금근로자 1301만7000여명 중 일용직은 234만8000명 임시직은 450만4000명으로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52.6에 이른다. 5년 전에 비해 10이상 증가한 수치다.
과거 비정규직이 육체노동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아르바이트 계약직 임시직 용역 파견 등을 비롯해 정규직과 똑같은 업무를 하는 화이트 칼라 비정규직도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 특징이다. 임시 일용 단시간근로(파트타임) 파견 및 재택 근로자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는 경제난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IMF 구제금융 체제를 겪은 이후 급속도로 늘어났다.
비정규직이 이렇게 급속히 증가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고용형태의 다양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 임금을 적게 주려는 사용자의 의도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일을 가속화시킨 것이 바로 IMF에 의한 구제금융 체제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 98년 금융권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한 은행여직원 김아무개(32)씨. 경기가 회복되면서 다시 은행에 고용된 김씨는 업무는 이전과 똑같으나 받는 임금은 정규직이었을 때의 1/3도 안된다. 실제로 지난 2년간 해고된 금융권 노동자 3만여명 중 절반가량이 김씨와 같은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특히 경제난을 틈타 강제해고된 노동자나 소비자파산으로 신용불량자(블랙리스트)가 된 경우에는 동종업체로 전직하려고 해도 정규직으로는 취업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비정규직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한편으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사회 안전망과 법적·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우리의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의 권익이 전혀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85만원에 불과하고 절반이상이 연월차 휴가와 상여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간외수당과 퇴직금이 없는 근로자도 비정규직의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회보험중 고용보험 의료보험 국민연금은 40가 산재보험은 60가 적용받지 못하고 있으며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도 55에 달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무엇보다도 불만스러워하고 있는 부분은 많은 노동시간과 각종 혜택의 부재 비인격적 대우에도 불구하고 해고에 대한 위협이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이삿짐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박씨(31)는 “일을 하다가 몸을 다치거나 정말 몸이 아파 쉬고 싶어도 ‘그렇게 하려면 나가라’고 고용주가 말한다”며 해고에 대한 불안한 마음에 쉬거나 불만을 표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억울한 심정을 표시했다. 또 불만을 표시해 쫓겨난 이들 때문에 노동시간과 강도는 예전보다 더 심화됐으며 임금은 절반수준으로 삭감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정규 상용직 근로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에 대해 적용되는 법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근로조건 보장에 관한 지침이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시행되고 있고 정부는 지난 1월 1년미만 단기계약 근로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방침을 확정했지만 이런 법규들을 제대로 적용 시행하고 있는 사업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사용자들이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장에 대해 인식하는 부분이 적고 근로자들 또한 해고에 대한 불안감으로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이를 감독해야 하는 정부의 행정력도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는 전세계적인 추세다. 관계자들은 값싼 임금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이 기업이윤의 극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오히려 고용에 대한 불안으로 삶의 안정성까지 침해받고 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노동문제상담소 이무술(데레사) 소장은 이에 대해 “사용자들이 경영사정 악화를 이유로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을 갈수록 늘려가고 있으나 실제로는 단지 이익을 조금 더 늘리겠다는 생각에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소장은 또 “비정규직 증가문제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이 아닌 이윤극대화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바로 노동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으로 이어진다”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될 경우 근로자들의 삶의 질 하락은 물론 가정파괴에까지 이르는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핵심업무 이외의 단순직에 대한 비정규직화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 업종에 관계없이 더욱 폭넓게 그리고 빨리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로 인해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 뻔하다.

이와 관련해 이미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에 발표한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만일 노동자가 궁핍 때문에 강요되거나 더 큰 악이 두려워서 더욱 힘든 조건들을 받아들인다면 또 원하지도 않는데 고용주와 기업주가 부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다면 그것은 폭력을 당하는 것이며 이에 정의가 항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사태 32항).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1년 ‘새로운 사태’ 회칙 100주년을 맞아 발표한 회칙 ‘백주년’에서 레오 13세 교황의 지적을 반복하면서 전 자본주의의 횡포가 오늘에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경고했다.(백주년 8항 참조)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노동은 노동자의 편에서 볼 때 ‘권리의 원천’이 된다. 오늘의 현실에서 비정규직이 증가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에게는 똑같은 노동력을 지불하면서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바로 교황이 말한 정의의 항거가 요청된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주나 기업가의 윤리 의식의 제고와 함께 근로자 자신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정부의 역할이 막중하다. “국민을 잘 돌봐야 할 공권력은 노동자들의 복지를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런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정의가 유린되기 때문이다”(회칙 백주년 8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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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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