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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교단 대희년 특별진단》한국의 가톨릭교육-이문희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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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고 세상에 사는 동안 계속되는 것이다. 태교의 중요성이 오늘날 일깨워지고 있고 사람들은 역사와 문화환경의 영향이 지대하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고 있다.
사람이 배우는 것과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건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으나 한마디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무엇을 어떻게 먹는 것인지를 배우고 또 먹을때 주의해야 할 것을 배우고 먹을 때가 언제인지 먹지 말아야 할 때는 또 언제인지 먹을 때 몸가짐은 어떠해야 하며 음식에 대한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등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먹고 살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도 이렇게 많은데 사람답게 잘 살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 또한 수없이 많다.
무엇이 사람다운 것이 되느냐는 건 사람됨이란 무엇이냐는 말이고 그것은 사람이란 무엇이냐는 말과 같은 것이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있고 또 있어야 하며 그에 따라 사람됨을 실현하는 길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는 실제로 취직을 잘해야 된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일정한 수준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돈을 벌어야 하고 또 남에게 대우를 받는 지위에서 일하기를 원하며 그것을 갖추어서 덜 불편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사람답게 사는 것을 자유롭게 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를 바라고 있다. 취직을 잘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교를 나와야 하기에 청소년기의 교육이란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준비의 과정이다. 즉 그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어릴 때부터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게 되어 학교교육은 시험준비 과정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람답게’라는 것은 인간문제인데 거기에는 인격 완성을 향한 노력이 있어야 함에도 인격에 대한 말은 거의 없고 생계안정을 위한 대책에 대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어린이는 아직 미래의 생계를 위한 것보단 자기 실현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인격완성을 도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의 강권으로 과외수업만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공을 비는 풍조는 비단 어떤 부류의 부모만이 아니라 이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러하고 나라가 그것을 유도하고 있다. 경제 대국이 되어야 하기에 사람마다 경제적인 동물이 되도록 이끌어가는데 그것이 공산국가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자유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사람다운 삶을 위해 배워야
이런 현상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꼭 같다. 일본 정부의 청소년 백서(平成 11년)를 보면 청소년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풍조로 다음의 4가지를 들고 있다. 1) 사회에서 최소한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룰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2) 특정의 가치마저 자기가 좋은 대로 해석하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3) 인권과 공공 복지 권리와 책임 등 여러 가지 상호간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4) 보다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하여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만을 바라고 모든 것을 바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4)항이 있기 때문에 1) 2) 3)항이 생기는지도 모르고 또 1) 2) 3)항이 있으므로 4)항이 계속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교육은 시험준비 과정
80년대부터 세계 각국에서 시작된 교육개혁은 우리나라에서도 85년 교육개혁심의회의 설치로 구체화되었다. 일본에서는 97년에 책정한 교육개혁 프로그램을 99년까지 두번 개정하였는데 그 첫째가 어린이들 마음의 교육을 충실히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어린이를 위한 방송을 하고 지역에 어린이 센터를 운영하며 가정에 가정교육 노트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도덕교육의 개선 충실을 기하고 상담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또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육성하는 학교생활이 되도록 종합적 학습을 해나가며 수업시간 감소(주5일제)와 선택과목의 확장뿐 아니라 학교의 자주성·자율성 확립을 기하고 여러 가지 규제를 완화하는 시책을 추진중이라고 한다(일본 문부성 교육백서 평성 11년도).
우리나라도 물론 이런 이론을 당국자들이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시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행이 순조롭지 못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어느 하나는 앞서고 다른 것은 뒤져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으며 끝내는 할 수 없는 것을 꼭 이루겠다고 시행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시대 요청에 맞는 학교교육을 위해 일본에서 미국의 챠타스쿨을 주목하고 있다면 우리나라에선 하루아침에 대안학교라는 것이 공포되었다. 대안학교는 검증을 거쳐 대안을 또 찾아야 할 것이다. 학교가 개방적이고 실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야 한다는 방향이 설정된 일본은 학교를 창의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 개성을 신장시키는 학교 선택의 폭이 넓어진 학교를 위해 학교제도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사립학교를 지원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아직도 정부의 규제를 벗어날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묶어둘 뿐 아니라 새로운 규제를 더 가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실정이 아닌가?
교육의 첫째 책임은 부모에게 있고 “가정은 최초의 학교이며 또 사회 전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 제3항)는 것이 사실이므로 국가가 교육에 관한 의무와 권리를 갖고 국민을 교육하도록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국민교육을 공교육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국가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제일의 목표처럼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면 사립학교는 없어야 할 있어서 귀찮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교육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사람을 국가에 필요한 국민으로 만드는 교육을 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에서는 “국가는 보완성의 원리를 염두에 두어 국가에 의한 모든 종류의 학교의 독점을 배제하여야 한다. 학교교육의 독점은 본래 타고난 인격의 권리와 문화 자체의 진보와 보급 시민의 평화로운 사회생활 그리고 특히 오늘날 많은 사회에서 존재하는 다원성에 역행하는 것이다”(제6항)고 천명한다. 문화 배경과 나아가 신앙이 다른 사람에게 같은 모양으로 생각하고 같은 모양으로 살라고 강요할 수 없듯이 특히 중요한 기초교육 과정에 일률적인 지침만 하달하는 식의 획일적인 교육은 없어야 할 것이다.
사람답게 잘 살도록 하려고 교육이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 사람다움은 어떤 사람인가를 밝힐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를 완전한 사람이라고 하느냐가 문제다. 효용 가치가 높은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완전하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며 그것은 누가 정하느냐는 어려운 문제가 또 나올 것이다. 결국 어느 누구도 완전한 것은 이런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고 성현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성현도 사람이라 그의 말이 온전한 진리라 할 수 없다. 그러면 결국 진리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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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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