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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교단 대희년 특별진단]-정명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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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전례없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사회’ 또는 ‘미디어 사회’로 불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초고속정보통신망 디지털과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기술혁명으로 인해 우리는 안방에서 TV 위성중계를 통하여 지난 성탄전야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로마 성베드로 성전의 ‘거룩한 문’을 열면서 새 천년의 대희년을 선언하는 모습을 시청할 수 있었다. 또 최근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채팅(chatting)을 통해 사목자와 평신도간의 다양한 교류가 생겨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 그리고 거기에 컴퓨터가 가세되는 상황은 그야말로 우리에게 과거와는 매우 다른 존재양식을 요구하고 있다.
새롭게 변해 가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세계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건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태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제도 그리고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새로운 시대’ 제1항). 이러한 변화는 구체적으로 “교회의 지각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는 교회의 구조나 기능 형태에까지 심각한 파급 효과를 몰고 오게 된다”(‘새로운 시대’ 제4항). 교회는 이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면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서 소위 ‘지구촌’을 형성해 가는 커뮤니케이션의 세계를 현대의 첫째가는 아레오파고”(‘교회의 선교사명’ 제37항)라고 규정하면서 복음선교의 중요한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21세기 문화의 세기를 맞은 한국교회 역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80년대 후반부터 괄목할만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풍요와 자유로움 속에서 국민들은 보다 다양해진 문화적 욕구를 지니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홍콩의 스타TV와 일본의 NHK나 와우와우 등의 방송이 인공위성을 통해 국경을 넘어 직접 국내로 침투하여 한국의 미디어산업을 위협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90년대 들어서면서 매스미디어산업에 개방화 자유화 탈규제화를 실시하여 보다 적극적인 미디어의 세계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종교계에도 다매체 다채널 환경이 조성되어 왔다. 가톨릭의 경우 교회 안에 ‘가톨릭신문’과 더불어 ‘평화신문’이 창간되었고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MHz 광주 99.9 MHz 대구 93.1MHz)와 평화방송 케이블TV(Ch33)가 개국하여 전국 시청취자에게 선교사명을 다하고 있다. 교회의 인쇄매체는 여러 출판사에 의한 도서출판과 잡지간행 그리고 음반이나 비디오와 같은 여러 종류의 소프트웨어들이 개발되어 생산 유통 소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교회 매스컴 환경이 풍요로워지고 다양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교회가 매스컴을 바라보는 전체적인 인식은 상당히 소극적이거나 무관심의 태도가 지배적이다.
교회가 복음선포의 근본적인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하느님의 선물”(‘일치와 발전’ 제2항)인 매스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현실은 선교와 미디어 또는 사목과 미디어를 밀접한 관계로 보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나 ‘마약상자’로 단정하고 ‘안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목자들도 꽤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태도다. 텔레비전은 최근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점점 ‘정보상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의 취향에 맞는 정보를 취사선택하게 해주는 텔레비전은 이제 ‘본다 안 본다’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볼 것인가?’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교회 지도자들은 매스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하여 복음화에 기여할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현대 매스미디어의 장점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리스도의 명령을 충실히 지킨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일치와 발전’ 제126항).
더 나아가 복음과 문화 역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지만 한국교회는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복음 즉 신앙의 내용은 문화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문화를 떠나서 복음과 신앙이 우리에게 전해지거나 이해될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이 항상 문화와 역사 안에서 규정되고 형성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경제와 정치가 문화현상이 되어 가는 오늘날엔 우리의 일상이 미디어를 통한 대중문화의 소비에 의해 형성되고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문화를 떠난 복음선포나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복음과 문화의 괴리는 틀림없이 우리 시대의 비극”임을 인식할 때 오늘날의 복음화를 바로 “문화의 복음화”(‘현대의 복음선교’ 제20항)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문화를 고급문화(성음악 성미술 교회건축 등)에 한정시키거나 복음의 공시적 내용에만 치중하여 신앙과 삶의 괴리를 심화시키고 있다. 교회는 고급문화를 육성하고 대중화시키는 노력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를 효율적으로 사목에 접목시켜 토착화된 신앙이 가능하도록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본당이나 특수사목 분야에서도 역시 미디어를 통해 시대에 부합하는 다양하고 효과적인 사목실천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최근 본당마다 선교열풍이 불어 많은 입교자를 배출시키는 놀라운 복음화 결과를 보이고는 있지만 반면에 점점 늘어가는 쉬는 신자에 대한 배려가 미진한 형편이다. 냉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본당의 사목 형태와 내용이 신자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구시대적 사목은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겐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교회 안에는 성별 연령 직업 등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지만 본당에서는 각 계층에 알맞은 사목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오늘날 청소년들에게는 새로운 언어인 영상 이미지가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 형태이지만 본당에서는 이들을 위한 영상시설이나 문화적 공간이 부족하고 마련되어 있다 해도 활용능력에 문제가 있다. 정보 미디어 시대는 “교회에 새로운 사명과 사목 방향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새로운 시대’ 제2항). 사목은 이젠 문화화된 ‘문화사목’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미디어환경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면 문화의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수돗물을 생각해보자. 수돗물은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유용한 것이지만 공급되어지는 물이 여러가지 중금속에 오염되어 마실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물을 정수기로 걸러 정화한 다음 깨끗한 물로 만들어 사용한다. 우리는 늘상 수돗물이 오염되었는지 아닌지를 지켜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미디어 역시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와 지식 오락을 제공하지만 인간성을 파괴하는 죽음의 문화를 생산 또는 재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교회는 드라마나 영화 또는 다양한 미디어 안에 내재해 있는 복음적 가치를 발견하여 신앙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면에 “인간 생활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무시한다거나 한결같이 부정적이고 냉담하게 다루는”(1997년 교황 홍보주일 담화) 듯한 매스미디어나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정화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매스미디어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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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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