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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발표 계기로 알아본 교회의 민족화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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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발표되면서 통일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드높다. 통일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노력없는 결실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 60년대에 전쟁이 일어난 6월25일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해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를 바치는 것으로 북한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냉전 이데올로기의 사고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과 특히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계기로 통일과 북한선교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조성됐고 이에 따라 1985년에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가 출범했다. 80년대 후반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심사가 민주화에서 통일로 옮겨지면서 교회도 통일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문규현 신부의 방북은 여기에 불을 붙였다.

90년대 들어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는 기존의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바꾸고 기도문도 이에 합당하게 새롭게 고치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가 교회 안에서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5년 서울대교구가 민족화해위원회를 발족하고 그해 여름부터 대북 지원과 함께 민족화해학교를 개설 교회정신에 입각한 통일교육을 시작함으로써 교회의 통일 노력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 특히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동포돕기를 교회의 핵심과제 중의 하나로 삼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통일의 그날을 기원하며 한국교회의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그간의 노력을 되짚어본다.
△1965. 6. 한국 주교회의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공식 결정.
△1974. 5. 푸른군대 한국지부 주최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회’ 임진각에서 개최.
△1975. 6. 김수환 추기경 평양교구장 서리 임명.
△1981. 5. 함흥·덕원교구장 서리에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동호 아바스 임명.
△1982. 12.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북한 선교부 신설.
△1984. 3. 캐나다의 고종옥 신부 한국 사제로서는 6·25 이후 처음으로 북한 방문.
△1984. 11. 북한 선교부를 주교회의 산하기구로 설치.
△1985. 8. 도쿄 주재 북한대사 김양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알현.
△1985. 9.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자격으로 방북.
△1985. 10. 북한선교부를 북한선교위원회로 승격.
△1987. 6. 장익 신부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협력에 관한 비동맹국가 각료회의’에 바티칸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
△1988. 6. 북한 조선천주교인협회 결성.
△1988. 9.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 장충성당 건립

△1988. 10. 장익 신부 정의철 신부 교황청 특사 자격으로 방북.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 봉헌.
△1989. 2. 박창득 신부 등 북미주 교포신자 방북.
△1989. 6. 문규현 신부 남북한 통일기원 미사 동시 봉헌 위해 방북.
△1990. 7. 한국종교인협의회 북한 조선종교인협회에 ‘남북 종교인회의’ 제의.
△1991. 4. 북한선교위원회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문’ 제정.
△1995. 3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결성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북한 첫 지원(적십자사에 북한돕기 성금 8000만원 전달).

△1995. 10. 남북신자 뉴욕서 ‘조국 통일을 위한 천주교인의 연대 강화’ 주제로 세미나.
△1996. 4.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평화통일 기원미사’ 남북 동시 봉헌(평양에서는 박창득 신부가 집전).
△1996. 8. 서울 민족화해위원회 수해로 식량난 겪고 있는 북한동포 위해 ‘사랑의 국수 나누기’ 운동 전개.
△1996. 9. 평양 광복거리에 한국교회 신자들의 정성으로 국수공장 건립.
△1997. 10. 주교회의 남북 화해와 대북지원 사업을 더 적극 추진하기 위해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설치’.
△1998. 4∼5.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북한동포를 위한 국제 단식 모금’ 운동 전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북한에 옥수수 3000t 비료 1000t 지원.
△1998. 5. 최창무 주교 등 사제 평신도 7명 방북(분단 이후 최초의 사목적 방문).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한적십자사 통해 북한에 식량 및 의약품 3억원어치 전달.
△1998. 8.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북녘 형제를 돕기 위한 ‘국수 나누기 운동’을 2000년 대희년까지 연장 실시키로 결정.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방북(평양 장충성당 설립 10돌 기념미사 봉헌).
△1998. 11.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북한 구호식량 6억원어치 지원. 김몽은 신부를 비롯한 아시아 종교인평화회의 대표단이 조선종교인협회 초청으로 방북(탈지분유 5t 전달).
△1998. 12. 북한선교위원회 북한동포 위해 ‘겨울옷 1만벌 보내기 운동’ 전개.
△1999. 1. 북한선교위원회 겨울옷 2000벌 북한에 1차 지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최창화 신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와 함께 대북 지원 사업 논의차 방북.
△1999. 5.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북한에 분유 옥수수 등의 식량과 함께 비료지원 시작.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 14개 민간단체와 함께 북한동포돕기 공동모금 운동 전개.
△1999. 6.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북한에 옥수수 2000t 전달.
△1999. 7. 대북 지원사업과 북방 선교 활성화를 위한 ‘민족화해 가톨릭 네트워크’결성.
△1999. 10.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의 명칭을 민족화해위원회로 개칭. 수원교구 북한동포 돕기 위한 ‘식사 한끼 겨울옷 나누기 운동’ 전개.
△1999. 11.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옥수수 3000t 북한에 전달.
△1999. 12.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김몽은 신부를 비롯한 북한방문단 방북 겨울옷 2600벌 전달.
△2000. 1. 제주교구를 비롯한 각 시민단체들이 북한에 감귤 416t 지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박창일 신부 외 2명 북한 농업과학원 초청으로 방북 대북 지원문제 논의.
△2000. 3. 주교회의 남한의 각 교구와 북한의 시·도 간의 자매결연을 통해 적극 지원할 것을 결정. 【박주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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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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