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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의견]민족화해를 위한 교회의 사명과 과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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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1일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발족한 이래 5년 남짓한 세월이 흐르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운동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자 사업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기도운동의 전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 화해학교 운영 등의 사업을 통해 각 교구와 수도단체는 물론이고 본당 차원의 신자들에게까지 그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뜻깊은 대희년을 맞이하고 분단 55주년에 즈음한 지금 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의미는 우리에게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더욱이 6월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이 한국전쟁 발생 50돌 직전에 열린다는 점에서 교회의 민족화해 운동은 하나의 날개를 단 느낌마저 든다고 하겠다. 이 같은 시점에서 우리는 교회가 벌여온 인도적 지원문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째 인도적 지원에 대한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전개된 국수나누기 운동 옥수수 지원 등 회원제 참여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교회의 고민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새로운 회원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인도적 지원의 구체적인 목표와 효과를 보여주는 교회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각 교구는 최근 주교회의에서 결정된 남한내 각 교구와 북한내 지역 사이의 자매결연 지침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지원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신자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자신들이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돕는가하는 목적의식을 갖게 해야 할 것이다. 뚜렷한 목적의식은 참여의 자발성을 한껏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도적 지원에 대한 투명한 모니터링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다. 얼마전 국제구호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와 ‘옥스팜’이 그리고 최근에는 ‘기아대책운동(Action against Hunger)’이 지원활동을 중단하고 북한으로부터 철수하였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활동이 당국의 극심한 통제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는데다가 지원 물품이 간부들의 횡령으로 인해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를 포함한 대북 지원단체들이 느끼는 어려움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교회가 북한형제들을 돕고자 작정한 이상 정부의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즉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이 보다 많은 인도적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투명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이렇게 될 때 교회의 인도적 지원은 보다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며 많은 신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북한의 내부사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대북지원 품목의 선택 문제다. 지금까지 교회의 대북지원은 주로 옥수수 밀가루 의류 의약품 등 기초적 생존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긴급구호 지원에 머물러 있다. 이런 품목들은 선택이 쉬울 뿐만 아니라 가장 손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선의의 목적을 지닌 교회의 대북지원이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품목선정이 검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북한의 내부사정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북한에서는 식량난 문제가 계급적 불평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영양실조 폐결핵 등 질병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산림이 황폐해져 가뭄과 홍수로 인한 자연재해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교회는 이제 대북지원 품목을 선정하고 지원방법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이같은 북한의 사정을 바탕으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인도적 대북지원의 목표에 관한 것이다. 인도적 지원은 어떤 국가 또는 정부당국이 무능하거나 또는 내부적 문제로 인해 혼란스러울 때 민간단체가 개입하여 인간의 기본적 생존권을 지켜주는 활동이다. 지금 우리 교회가 전개하고 있는 대북 지원 활동은 북한 당국이 저버리고 있는 의무를 대신해 주려는 의도적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배급을 통해 사회를 통제해 온 북한의 국가역할과 충돌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같은 충돌을 회피하기보다는 직면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북지원 활동은 북한의 당국자들을 정당화시켜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어떤 선교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업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세대’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북한의 청소년 및 유년세대를 위한 형제를 위한 사람을 위한 즉 하느님의 사랑을 닮아가려는 사업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인도적 지원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이상과 같은 스스로의 문제의식과 함께 정상회담을 계기로 예상되는 당국자간의 채널을 통해 대북 지원활동 보장을 북한측에 요구하도록 하며 교회도 직접 북한 당국과 입씨름 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사업이라 해서 지원을 중단하고 철수한 국제구호단체처럼 행동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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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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