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고백하고 그에 따른 용서를 청원하는 내용은 성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조상들의 죄”가 언급되는데 이때 죄의 고백은 오직 하느님께만 하고 있으며 고백하는 내용 또한 다른 사람들을 거슬러 지은 죄라기보다는 직접 하느님을 거슬러 지은 죄와 관련된다. 어쨌든 구약성서는 조상들의 죄에 대해 후손들이 책임을 지는 연대의식을 표현하고 있다(다니 3 26. 29―3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회는 자기 자녀들이 역사에서 지은 죄들에 대해 용서를 청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전통을 따라서였다.
죄와 관련된 주제로 신약성서에서 널리 표현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절대적인 거룩하심이다. 예수의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며 ‘거룩하신 아버지’이시다. 하느님의 이 거룩하심은 나자렛 예수 안에서 구체화된다.
예수 가르침에서의 핵심은 이웃 사랑이다. 또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듯이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라”고 가르친다. 예수는 화해와 죄의 용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죄로 인해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손상되었음을 의식하는 죄인은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죄의 용서를 기대할 수 있다. 하느님만이 언제나 자비로우시고 우리의 죄를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가 제시된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정화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화해하고 새로운 삶을 살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약함과 결점을 안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초기부터 ‘주님의 기도’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루가 11 4)라고 기도를 드렸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소명에 부합되게 살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화해와 과거의 그릇된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성서적 전거는 레위기 25장의 희년 규정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하느님 백성의 평등함을 잘 드러내고 또 이스라엘의 가장 보잘것없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희년은 비록 이스라엘 역사에서 한번도 제대로 실천된 적이 없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올바른 질서를 다시 확립하려는 것이었다.
레위기의 희년이 제시하는 해방의 개념은 예언자들에 의해 훨씬 더 폭넓게 확장된다. 특히 이사야서 61장은 메시아가 와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복음)을 알리고 사로잡힌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언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루가복음 4장 17―21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예언은 예수에 의해 실현된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과거와 현재에 자기 자녀들이 지은 잘못에 대한 죄를 인정함으로써 희년을 뜻있게 지내야 한다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호소는 비록 정확히 부합하는 성서 구절은 없지만 성서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황의 호소는 성서적 희년의 정신을 올바로 포착하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최초의 창조 계획 질서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으며 희년이 ‘오늘’ 이루어졌다는 예수의 선포(루가 4 21 참조)가 교회의 희년 거행에서 계속되어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