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사람이 되어서 오수를 떠나겠습니다.”
약속과 다짐(고해성사)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술에 취한 주인 주변에 난 불을 자기의 몸으로 끄고 주인을 살리고 목숨을 바친 의견의 충성스러움이 자리한 마을. 초라함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있는 작은 성당 주일미사 80명 참석의 작은 공동체. 첫 본당 신부인 만큼 착한 목자의 역할이 소중하다. 소박한 사람들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사제다움의 멋이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두고 사는 현실인가. 돈 성공 권력 명예 건강 젊음 미모 컴퓨터 텔레비전 노래방 술과 같은 소유와 우상 앞에서 고해성사는 어떻게 삶의 성사로 자리할 것인가 풀어야 할 과제다.
사제들과 신자들은 고해성사에 대한 반가움과 즐거움을 체험하고 있는가. 축제의 시간인가 아니면 의무감의 이행인가. 기쁨인가 아니면 부담스러운 짐인가. 깊이 묵상하고 성찰하자.
일년에 두 차례 행해지는 연중행사인가. 정신없이 바쁘고 고단한 사제들의 수고스러운 행군처럼 명절 때 기차나 버스를 타기 위해서 기다리는 행렬처럼 부활과 성탄 전에 거쳐야 할 형식적인 절차처럼 느껴지는 정서를 어찌 할 것인가.
고해성사는 모두의 축제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서운 심판관 하느님 상에서 벗어나 사랑이신 아빠 아버지 하느님 상을 갖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천국과 지옥 죄와 벌 그리고 심판 중심의 고정되고 경직된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죄와 허물만을 고백하는 태도에서 사랑과 감사와 은총을 고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구원 지향 의식에서 공동체의 구원지향 의식이 필요하다. 고해자의 고백과 사제의 훈계와 보속내용은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여야 한다.
고해성사는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하느님 체험 이웃 체험 사랑과 신뢰와 자유체험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고해성사 안에 음악과 춤이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신자들과 함께 고해성사 때 점심식사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철쭉나무를 심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다.
소화 데레사의 말씀을 잘 기억하자.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은 어떤 어머니보다도 더 부드러우시다.” 고해성사를 보면서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더 이상 잃지 말아야 할 사순절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무상의 예수의 사랑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