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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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평화-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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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도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엄마부터 찾는다. 엄마의 인기척이 없으면 아이는 금세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 한다. ‘엄마’는 아이에게 ‘평화’ 그 자체다.
엄마가 없는 아이들. 그 아이들과 한 가정을 이루고 엄마가 되어 평화를 심어주는 사람이 있다. 민동순(54·마리아 고레티)씨. 그녀는 서울 SOS 어린이마을에서 22년째 27명의 아이를 키워온 최고참 처녀 엄마다. 이미 다섯 아이를 결혼시켜 손자도 7명이나 있다.
민씨는 얼마 전 대학 2학년인 딸 영희(가명)한테 편지를 받았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최고야.”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엄마를 사랑한다’는 내용을 반복해 쓴 2장의 편지지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지던 민씨의 머리 속에는 아이들과 부대껴온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영희는 민씨가 엄마가 된 후 기른 첫 딸이다. “생후 한 달 된 핏덩이 영희를 처음 보았을 땐 암담했어요. 우리 영희를 정상아로 잘 자라게 도와달라고 기도한 것을 모두 합치면 영희 덩치보다 훨씬 클 거예요.”
영희는 미숙아로 남들이 포기했던 아이다. 100일이 되어도 고개를 못 움직이고 한번 울었다 하면 서너 시간을 울어대며 잠을 안 자 민씨는 영희를 늘 끌어안고 기도하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봄 가을로 보약을 달여 먹여야 할 정도로 약했던 아이가 어느새 엄마를 이해하고 동생들을 돌봐주는 건강한 처녀로 성장했다.
민씨는 어려서부터 낙도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봉사하는 삶을 꿈꿔왔다. 그 꿈 대신 본당 전교사로 예비신자 교리와 주일학교 교리를 가르치며 봉사하던 그녀는 1978년 12월 어느날 신문을 보다가 한 귀퉁이에 난 ‘SOS 마을 어머니 모집합니다’라는 제목에 시선을 멈췄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과 평생을 살 수 있다면’.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평생 결혼을 안하고 봉사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그녀지만 남의 아이 키우는 일을 ‘소명’으로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가족들은 ‘어머니’로 봉사하는 삶이 너무 힘들다며 지금이라도 결혼하라고 난리였지만 그럴수록 마음이 굳어진 그녀는 대구 SOS 마을을 찾았다. 놀이터에서 놀던 SOS 마을 아이들은 일반 시설 아이들과 달리 낯선 사람이 지나가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미 어머니 모집은 끝났지만 그녀의 또 다른 소명이었는지 운좋게 예비 어머니인 ‘이모’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남들보다 짧은 8개월 정도의 이모생활을 거쳐 79년 9월 정식으로 어머니가 되어 첫 딸 영희를 맡아 가정을 꾸렸다.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미숙아 영희에게 신경을 쓰느라 숨돌릴 사이도 없는데 6살 정아(가명) 이어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형제가 민씨 가정에 들어와 한식구가 되었다. 1년 뒤 아이가 9명으로 늘었고 82년 서울 SOS 마을이 개원하면서 민씨와 아이들은 서울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는 것은 민씨 가정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신경을 안 써도 자기 일을 알아서 잘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매를 들고 야단치며 가르쳐야 하는 아이도 있다.

고아원에서 살던 9살 12살 형제가 왔을 때도 엄마는 무척 힘들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제 나이보다 3∼4살 아래로 보일 만큼 왜소한데다 큰 형은 거짓말과 도벽이 심했다. 엄마 지갑에 있는 돈도 훔쳐갔다. 아무리 타이르고 매를 들어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아이를 붙잡고 함께 울기도 했다.
어느날 아이가 울면서 고백했다. “엄마 고아원에 있을 때 형들이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할 때 안가져가면 막 때렸어요. 형들 먹을 것을 갖다주다 보면 내가 배가 고파 또 훔치게 되고요.”
아이는 몇 년이 지나서야 완전히 도벽 습관을 고쳤고 지금은 믿음직한 청년으로 자라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다.
서너 달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사춘기를 심하게 앓던 아이 우울증과 자폐증으로 4∼5년씩 매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치료받던 아이 또래집단과 어울려 방황하던 아이들도 어느새 사회인으로 커서 제몫을 하고 있다. 가정의 중심인 ‘엄마’가 있기에 아이들은 흔들리다가도 안정을 찾는다.
부모가 없는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이곳에 온다. 5∼6년간 잘 키워 정들었던 아이를 어느날 친부모가 나타나 기르겠다며 데려갈 때는 마음이 너무 쓰렸다. 아무리 이곳에서 잘 키운다고 해도 친부모 품만 하겠느냐며 위로하지만 한동안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가 어려웠다.
아이가 말을 안들어 속상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지나고 보면 잠시 그보다는 아이가 어른들 때문에 상처받아 마음이 아픈 적이 더 많다. 아이가 평소와 다르게 시무룩해져 있는 경우에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하면서 아이를 따돌림한 것이다.

“왜 친엄마가 나를 버렸느냐며 묻는 아이는 차라리 괜찮아요. 너와 헤어진 친엄마 심정은 오죽하겠느냐며 이해를 시킬 수 있지만 속으로만 삭이는 아이는 더 상처가 커요. 아이들은 순수해서 계산을 하지 않는데 어른들이 편을 갈라 제 아이를 위한다면서 도리어 나쁜 길로 빠져들게 해요.”
민씨는 특히 요즘 엄마들이 아이를 너무 과잉보호하며 ‘사람답게’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 중에는 학교성적이 뒤떨어지는 아이들도 있다. 이 아이들에게는 정말 과외가 필요하다. 그러나 과외비 등 사교육비는 별도로 책정되어 있지 않아 아이를 키우고 받는 엄마 한달 월급은 정작 엄마를 위해 쓰지 못한다.
몇 년 전 아이 7∼8명이 한꺼번에 소풍을 갈 때가 있었는데 마침 월말이어서 생활비가 바닥이 났다. 김밥을 싸주고 용돈을 주고 싶은데 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과거 종교 교사로 잠시 근무한 적이 있던 학교의 제자가 신부가 되어 찾아와 살림에 보태라며 작은 액수지만 돈을 내놓았다. 그녀는 절박할 때면 이렇게 하느님이 십자가를 혼자 지고 가게 하지 않는다는 체험을 하곤 한다.
아이들이 여럿이 함께 자라다 보니 성격이 원만해지는지 딸들은 결혼해서 시부모에게 귀염을 받는다. 얼마 전에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첫 아이를 낳아 돌잔치를 한 딸 집에 ‘가족’이 다 모였다.
“어머니 저희들을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이 없었다면 저희는 바로 서지 못했을 겁니다. 저희 때문에 주름살이 늘고 지친 어머니 이제 저희에게 기대세요.”
내년이면 은퇴하는 민씨는 한 가정의 구심점으로 ‘그분’께 의지하며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왔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또 사회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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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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