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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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교단 대희년 특별진단⑭ 군복음화와 역할-이기헌 주교(군종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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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군대를 ‘선교의 황금어장’이라고 한다.
주교서품을 받고 군종교구에 온 지 얼마 안되어 논산훈련소에서 성탄미사를 드리러 가서 이 사실을 더욱 실감하였다.
3000명이나 되는 젊은 청년들이 성당을 가득 메우고 우렁찬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는 가운데 이루어진 성탄미사는 감동적이었다.
지난해 논산훈련소 ‘연무대성당’의 세례자 수는 3100명이었다. 그 어느곳에서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하는 곳이 군대이다. 한창 학업에 열중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다가 복무를 하러 오는 군대생활은 젊은이들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세계이다. 복종과 엄격한 규율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다양한 구성원들과 공동체를 이루면서 때로는 훈련으로 땀을 흘리고 때로는 내무반 생활을 통해 서로 다른 고향이나 생각들을 나누며 특별한 젊음을 체험하는 곳이 군대이다.
일생을 통해 군대생활만큼 여유있게 자신을 돌아보고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남자들의 모임에서 군대 이야기들을 떠올리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자기만이 겪은 듯 신바람나서 하는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어주고 또 그것을 이어받아 신나게하는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른다.
이렇게 군대생활이라는 것은 조직생활이나 공동체생활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의미있는 곳이며 자유롭게 생활하던 젊은 사람들에게는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과제가 많이 주어지는 곳이다.
군대 교육과정이나 공동생활을 통해 인내심이나 희생을 배우고 때로는 인생관을 깨우치거나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뿐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종교 갖기를 권장하는 군대 분위기나 선교에 열성적인 지휘관과 각 종파 군종장교 신자들의 선교활동으로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신앙을 갖게 된다.

현실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건전한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하는 군대는 그야말로 각 종파들이 선교에 역점을 두는 장소이기에 군대안에서 벌어지는 선교경쟁은 대단하다.
현재 군대에는 천주교·개신교·불교 3개 종파에서 성직자들을 파견하여 신자들을 돌보고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천주교에서 파견한 군종신부는 육·해·공군 모두 합쳐 74명인데 비해 개신교는 350여명의 군목과 군선교후원회에서 지원하는 150여명의 일반목사와 인근지역에서 선교를 위해 지원하는 지역의 목사나 전도사를 포함한다면 그 수치는 대단하다. 또 불교도 예전에는 선교열이 약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부쩍 군포교활동에 열성을 기울이고 지원도 대단하다.
정확한 통계를 말하기는 어려우나 지난해 개신교의 경우는 20만명에 가까운 세례자를 내었고 불교도 8만여명이 수계를 받았는데 우리 천주교는 만명이 채 안되는 82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렇게 선교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요 요인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이 있겠다.
첫째는 성직자수의 부족이다. 개신교의 경우는 연대급까지 군목사가 있으나 천주교는 여러개의 사단이나 군단급에도 신부가 없는 경우가 있어 선교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개신교 목사나 불교의 법사들은 아예 한번 군대에 들어오면 대개의 경우 군대에서 장기복무를 하여 더 실적을 올려 인정받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 군종신부들은 대개 4년을 마치고 제대하려는 쪽이 대부분이어서 군대안에서의 선교 풍토나 선교 열의에 회의적인 경우가 많다. 이 결과 개신교의 경우는 교회에 한두번만 나와도 세례를 주는데 우리 군종신부들의 경우는 짧은 기간에 세례를 주는 것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선교 협력자의 부족이다. 사관학교나 훈련소에서 사목하거나 신병교육대가 있는 부대에서 사목하고 있는 군종신부들은 대개의 경우 “개신교와는 게임이 안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개신교에서는 선교의 요지면 일반 성직자들의 협력은 물론 부대의 모든 간부와 심지어 생도들이나 사병들까지 힘을 합쳐 열성적으로 선교에 열중하는데 천주교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천주교의 경우는 한 사람의 사제와 간혹 선교활동을 도와주는 수녀가 한두명 있을 뿐이다.
셋째는 지원의 부족이다. 이것은 먼저 말한 성직자나 협력자에 관한 지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군복음화라는 중요한 과제에 대해 모든 신자들의 인식부족에서 오는 정신적인 후원을 비롯한 재정적인 지원의 부족이다. 천주교의 경우는 일년에 한번 지내는 군인주일때 갖는 관심과 2차 헌금으로 큰몫이 끝나지만 개신교의 경우는 세례자를 늘리도록 군목사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은 물론 야전부대에서는 대대 단위로 일반교회와 자매 결연을 맺어 지속적으로 인원과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 결과 각 단위별 같은 규모급 부대의 개신교와 천주교의 재정 규모는 대개의 경우 10배 이상의 차이가나 그 지원의 열세를 실감할 수 있다.
교파 이기주의가 심할 수 있는 개신교가 교파를 초월하여 군대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군복무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미래이며 교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군 복음화
복음화는 두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넓은 의미에서 군대의 모든 군인들을 염두에 두는 직접적인 선교가 아니라 교회가 해야하는 복음화다. 국가의 장래와 교회의 앞날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면 누구나 거쳐가는 군대는 교회가 사목의 장소와 대상으로서 커다란 비중을 두고 관심을 가지고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우리 한국사회는 그 어느곳에서도 정신적이거나 올바른 인간교육을 시키는 곳이 없다. 참다운 교육 현장이 부재해있는 현실속에서 군대는 참으로 중요한 교육의 장소이다. 우선 군대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곳이고 그 복무기간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젊은이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종교의 역할을 종파를 초월해서 하여야한다.
물론 군대안에는 정훈이라는 병과가 있지만 사병들에게 깊숙이 파고들 수 있고 인간적으로 젊은 병사들과 직접적이고도 끈끈하게 연결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부분은 바로 군종장교인 각 종파의 성직자들이 할 수 있는 몫이다. 군대야말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폭넓고도 총체적으로 정신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이 점에서 모든 종파는 선교 일변도로 흐를 것이 아니라 사병들을 비롯한 군인들에게 정신적인 부분에 보다 많은 활동을 하여야 할 것이다.
두번째는 교회의 고유한 의미의 복음화 곧 선교이다. 선교의 황금어장인 군대에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을 교회로 인도할 것인가는 선교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얼마나 많은 지원을 하는 가에 달려 있다. 물론 군종교구가 있어 그 일을 주도적으로 하고는 있지만 군선교는 초교구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교구의 젊은이와 군종신부들이 군종교구에 들어와 있고 군종교구의 신자와 본당은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군종교구가 안고있는 제도적이며 조직적인 어려움 때문에 교구청이 지원의 역할을 ?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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