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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서품 50주년 맞는 전 부산교구장 이갑수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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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산교구장 이갑수 주교가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는다. 부산교구(교구장 정명조 주교)는 오는 20일 남천 주교좌성당에서 이 주교와 금경축을 맞은 다른 4명의 교구 사제들을 모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온 반세기’를 축하할 계획이다. 1975년 부산교구장으로 착좌해 25년간 부산교구를 이끌다 지난해 8월 은퇴한 이 주교를 부산 사하구 다대동의 숙소에서 만났다. 편집자

“건강합니다. 매일 하느님과 함께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웃집 할아버지같은 친근한 분위기의 이 주교는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자세가 흐트러짐 없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은퇴를 하고도 저술과 피정 지도 본당 특강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주교는 하느님과 함께해온 지난 50년의 사제생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로 6·25전쟁 당시를 떠올렸다.
6·25 전쟁 발발 당시 이 주교는 사제서품을 1년 앞둔 부제였다. 서울 혜화동 신학교에서 생활하던 이 주교는 한강을 건너는 마지막 나룻배를 타고 기적적으로 서울을 탈출 걸어서 지금의 안성까지 피란했다. 이 주교는 이때 일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믿고 있다. 안성에서 간신히 화물기차에 올라탄 이 주교는 천안을 거쳐 무사히 대구까지 올 수 있었다.

“총소리가 바로 뒤에서 울렸습니다. 그때 서울을 빠져 나오지 못했더라면 아마 사제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주교는 유난히 전쟁과 인연이 깊다. 해방되던 해에는 19세의 어린 나이에 징용돼 일본으로 끌려가 군생활을 하기도 했다. 해방되던 해라 전쟁 경험은 없지만 일본 지바현의 한 군대 막사에서 라디오로 해방 소식을 듣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주교의 전쟁 경험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됐다.
전쟁을 피해 대구까지 피란온 이 주교는 당시 대구교구장 최덕홍 주교의 배려로 교구청에서 생활하다 그해 10월에 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전쟁중이어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급하게 서품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제들에 비해 1년 일찍 서품을 받은 거지요.”
전쟁중에 부산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한 이 주교는 이후 대구효성여대와 경북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교육자의 길로 들어섰다. 66년부터 5년 동안 대구 선목고등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주교는 이때가 사제로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사제생활의 행복에 젖어 있던 이 주교의 생활은 71년 부산교구 보좌주교가 되면서 ‘외로운 사제직’으로 바뀌게 된다.
“하느님께서 사제직과 주교직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시면 사제직을 택하겠다고 말하겠지만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제직이 적성에 더 맞는 것 같지만 하느님께 순종한다는 생각으로 주교직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이 주교의 열성은 부산교구장으로 착좌하면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이 주교는 부산 가톨릭대학교를 설립하고 주교좌 성당과 부산가톨릭회관을 건립하는 등 교구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교구장 착좌 당시 본당 30여개에 불과하던 부산교구는 이 주교 착좌 이후 90여개 본당으로 늘었으며 신자수도 3배 이상 증가했다.
부산교구를 이끌어 오는 동안 이 주교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신자들이 신자답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과제는 영성의 빈곤입니다. 옛날에는 신자와 비신자를 겉모습만 보고도 구분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아요. 신자 개개인들이 과연 제대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이 주교는 신자들이 하느님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을 생활 속에서 드러낼 때 진정한 의미의 선교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의식적으로 하느님을 생활 속에서 기억하고 하느님 중심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을 항상 인식하고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신자상은 희로애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있게 복음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신자입니다.”
사제들에 대한 당부도 이어졌다.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다짐한 사제는 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들은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조차 사랑한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반세기를 걸어온 한 노 주교의 모습에서 사제가 아닌 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정한 삶의 자세가 느껴졌다. 저절로 기도할 수 있게 하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즐겨 듣는다는 이 주교. 한국교회 50년의 중심에 있어온 한국교회의 큰 어른임에 틀림없다. 【부산 〓우광호 기자】

약력 ▲50년 10월 사제서품 ▲50년 11월 부산 범일본당 주임 ▲52∼60년 미국 유학 ▲61년 대구대교구 교구장 비서 ▲61∼69년 효성여대 경북대 강사 ▲66∼71년 대구 선목고등학교 교장 ▲71년 8월 주교서품 및 부산교구 보좌주교 ▲75년 6월 부산교구장 착좌 ▲99년 8월 은퇴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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