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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문헌 기억과 화해:교회와 과거의 잘못들 주요내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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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와 오늘의 문제 1. 교회는 언제나 희년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을 기뻐하는 때이자 하느님 백성들의 죄에 대한 회개와 화해를 위한 특전의 시기로 지내왔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를 돌아볼 때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교도권이 용서를 청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물론 공의회와 교황의 문헌들이 성직자와 평신도가 범한 악폐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많은 목자들이 이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한 적은 있었으나 교권(敎權)을 가진 이들 즉 교황이나 주교들 공의회에서 자신들이 범한 잘못이나 악폐에 대해 공개적으로 인정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교황 아드리아노 6세는 1522년 11월25일 뉘른베르크 의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당시의 로마 법정이 가증스러운 행위와 악폐 그리고 거짓의 죄를 지었고 그것은 최고위층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게 널리 퍼져 있는 질병”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렇지만 그는 당시의 죄들에 대해 개탄했지만 용서를 구하지는 않았다.
교회의 잘못에 대해 처음으로 하느님께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용서를 청한 것은 교황 바오로 6세였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두번째 회기 개막 연설에서 “우리(가톨릭 교회)가 해를 입혔다고 느낄지 모르는 동방의 갈라진 형제들과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며 가톨릭 교회가 입은 해에 대해서도 기꺼이 용서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오로 6세가 용서를 청하고 용서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의 죄에 관해서였다.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바오로 6세와 같은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공의회 교부들은 교회의 일치를 거스른 잘못들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과거의 잘못된 사례들에 대해 개탄했다. 또 무신론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들의 탓이 없지 않음을 인정하고 나아가 반유다주의 박해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공의회는 용서를 구하지는 않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학적인 관점에서 흠없는 교회의 충실함과 교회 구성원들인 평신도와 성직자들의 나약함을 구별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는 교회는 거룩하면서도 동시에 정화해야 하며 끊임없이 회개와 쇄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언명하고 있다.
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에 대해서뿐 아니라 다른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용서를 청함으로써 그 영역을 확대시켰다. 교황은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2000년 대희년이 지난 천년의 역사 안에서 발생한 온갖 형태의 ‘반증거와 나쁜표양’으로부터 교회의 ‘기억의 정화’가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교회는 “자녀들의 죄를 더욱 충분히 의식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물론 교회는 자기 자녀들에게 죄가 많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자녀들이 “참회를 통하여 과거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 자신을 정화하도록” 격려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서 ‘화해와 참회’에서 과거의 잘못들에 대해 책임지는 문제와 동시대인들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신학적으로 더욱 깊이있게 제시했다. 죄는 아무도 대신해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수 없는 비록 전체 교회에 상처를 준다 하더라도 항상 개인적이다. 죄에 대한 책임은 작위(행동)나 부작위(행동하지 않음) 또는 부주의함을 통해서 그 죄를 지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만 물을 수 있는 것이다.
4. 많은 부분에서 교회의 과거는 교회의 현재를 구성한다. 교의적 전례적 교회법적 그리고 수덕적 전통은 믿음의 공동체의 삶을 향상시키며 본받아야 할 모델을 제공한다. 그러나 현세의 순례여정을 보면 알곡은 언제나 쭉정이와 섞여 있다. 성덕이 불충이나 죄와 혼재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일은 오늘날 교회의 증거 활동에 장애가 될 수도 있으나 교회의 자녀들의 과거 잘못을 깨닫는 일은 현재의 쇄신과 화해에 기여할 수도 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규정은 역사적 판단을 요구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즉 신앙인들은 사회가 하나의 그리스도교 세계를 이루었던 과거 시대의 사건에 대해 그 잘못이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있었는지 아니면 그리스도교와 결부돼 있던 당시의 권력구조에 있었는지를 구별해야 한다.
십자군 전쟁이나 이단 심문과 같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오늘의 양심이 짊어질 수 있는가? 도덕적 양심은 시대 상황과 전혀 상관 없다는 듯이 과거 사람들을 오늘날의 양심으로 판단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발상이 아닌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특히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용서를 청해야 한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하느님과 이웃과의 화해라는 성서적 신학적 지평 안에서 명확하게 밝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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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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