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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난민들의 대희년 특집]경북 청송이 고향인 박영자씨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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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유일한 소망은 부모님의 고향이자 제가 태어난 곳인 이곳 한국에서 하느님께 저와 중국에 있는 자녀들의 영혼구원을 기도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중국 길림성에서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 박영자(가명·63·엘리사벳)씨. 고향인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부푼 꿈을 안고 9년간을 지냈지만 현재 그녀는 ‘불법 체류 조선족’이라는 딱지만 붙은 채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서 들은 고향의 모습과 친척들의 얘기. 중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았지만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자 그녀는 꿈속의 고향이 가고만 싶었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88년 1월 고향인 경북 청송에서 친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호적에는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었다.
박씨는 92년 마침내 한국행을 결심하고 처음 언니 집에서 지내다 중국의 자녀들을 데려와 고향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일자리가 많은 서울에 와 일을 시작하게 됐다.
식당 파출부에서부터 직물공장에서의 재봉일 포장일 등 오직 한국에서 살겠다는 집념으로 돈을 모으기 위해 박씨는 하루 두 시간씩 잠자며 일할 경우도 많았고 조선족이기 때문에 받는 심한 모욕과 차별대우도 참아야 했다.
“욕을 얻어먹거나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이도 어린 사람들이 반말을 하면서 참기 힘든 모욕을 주거나 불법체류자라며 위협할 때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아무런 권리도 없고 오직 숨어살아야 하는 처지였기에 박씨는 위협이나 모욕이 마음을 괴롭혀도 그냥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믿었던 한국인 사업가에게 그동안 모은 돈을 잠시 맡겼다가 몇 년이 지나도록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불법체류로 고소하겠다는 위협만 받았을 때는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내 나라에 와서 왜 이런 마음고생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고향이자 부모님의 고향에서 왜 이런 대우를 받는지 알 수 없습니다. 국적 취득은 안되더라도 저희 조선족을 같은 동포로 인정해 주었으면 합니다.”
박씨는 중국에서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문화혁명 이후 신앙생활을 쉴 수밖에 없었고 이제 다시 한국에 와서 제2의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박씨는 “현재의 상황이 힘들고 억울하고 불안하지만 언젠가는 조선족들이 한국동포로 인정될 날을 꿈꾸면서 지내고 있다”며 “지금의 어려움은 모두 하느님이 다시 채워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임동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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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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