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 우량아 원중(암브로시오)이는 웬일인지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면 몸
에 멍이 자주 들곤 했다. 그래도 엄마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보면 그러려니 하
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원중이가 달리기를 하면 금방 숨이 차 오른다
고 하더니 코피를 한번씩 흘릴 때마다 멎는 시간이 길어졌다.
96년 5월 초등학교 4학년이던 큰 아들 원중이가 코피를 연달아 쏟더니 좀처
럼 멎지 않아 당황한 부모는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검사결과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판정이 내렸다. 처음 들어본 병명이라
어리둥절했던 부모는 이내 소아암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을 느꼈다.
“왜 우리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하느님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
습니까.”
원중이의 부모 이재승(45·베네딕토) 최명숙(40·로즈마리)씨는 4년전 이렇
게 ‘왜’라는 질문만 계속하며 절규했었다. 사업에 실패한 후 좌절감에서 간신
히 벗어나려던 이씨 부부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내가 시어머니에게 잘못해서 아이가 저런 병에 걸렸나. 아니면 남편에게
너무 바가지를 긁고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많이 해서 하느님이 벌을 주시는 것
인가. 성당활동에 너무 소홀해서 그런가’ 등등. 최씨는 별별 생각을 다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하느님과 멀어져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울
면서 하느님께 매달리며 절절히 기도하던 최씨는 그동안 자신의 신앙이 너무
형식적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남편사업이 불안해지자 새벽에 조간 신문을 돌려 생계에 보탰던 최씨는 지
금도 신문 배달을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받는 한달 수입이 50만원이 조금
넘는다. 신문에 광고지를 끼워 돌려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새벽 2시께에는 일어
나야 하는 최씨는 가장 먼저 원중이 방부터 들러 살핀다.
어느 날인가 피곤한 몸으로 늦잠을 자다 급하게 나가느라 최씨는 미처 큰아
들 방에 들르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원중이에게 일이 일어났다. 일을 마
치고 아침 8시께 들어오는 엄마 대신 원중이 등교를 보살피고 있는 아빠 이씨
는 아침에 기척이 없는 원중이 방에 갔다가 놀랐다. 헐어있던 잇몸이 터져 입안
에서 피가 멎지 않고 계속 흘러 이불이 빨갛게 젖어 있었던 것이다.
부모는 원중이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이렇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
기 때문이다. 피가 재생되지 않아 매주 수혈을 받아야 하는데 피를 많이 쏟아냈
으니 또 얼마나 상태가 나빠진 걸까. 원중이는 병원에 보름정도 입원해 상태가
나아진 뒤 퇴원했다.
원중이는 다리가 저리고 피곤하다고 자주 말한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안절
부절이다. 그래서 원중이는 바깥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싶어도 참는다. 또
심한 운동도 힘든 일도 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아빠와 같이 전철을 탄 원중이가 노약자석에 앉게 되었다. 마침
얼굴이 창백해 보이는 환자를 데리고 탄 보호자가 원중이 앞으로 오더니 왜 일
어나지 않느냐는 식으로 나무랐다. 원중이 아빠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키
176cm에 몸무게 90kg의 거구를 누가 환자인줄 알겠는가. 아빠는 원중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이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목욕탕에 가서도 아이의 핏기없는 몸을 보면 안쓰럽다. 얼굴색이 까
매져도 걱정이다.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온몸에
황달기를 보이고 눈에 핏발이 서면서 몰골이 말이 아닌 적이 있었다. 다시 골수
검사를 하고 3 4일이 지나서야 조금씩 혈색이 돌아왔다.
원중이는 매주 수혈을 받으면서도 1년에 한두 번은 상태가 악화되어 입원을
하곤 한다. 입원과 통원치료를 반복하고 있는 원중이에게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줄잡아 7000만원이나 된다. 골수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한
다. 골수 이식 수술비도 8000만원 이상인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비 5000만
원도 남의 돈이 절반이다.
원중이는 목요일마다 아빠를 따라 새벽 6시에 병원으로 향한다. 원중이가 사
는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성모병원까지 가려면 아침 출근길로 교통이 막히기 때
문에 일찌감치 떠난다. 두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9시께 피검사를 하고 10시부터
1시간30분 정도 수혈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그래야지 오후 수업을 받을 수 있
다.
중학교 2학년인 원중이는 비교적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식성도 좋아 그나
마 다행이다. 아픈 형을 보면서 자란 탓인지 초등학교 2학년인 동생 동규(마르
코)는 의젓하다. 가족들과 같이 성서를 함께 읽고 난 뒤에는 꼭 형의 건강을 위
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원중이 아빠는 본당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열심히 활동하면서 그동안 버
텨왔다. 레지오 활동마저 손을 놓으면 아예 쓰러질 것 같아서다. 근처 명휘원을
찾아 장애아들을 목욕시켜 주는 봉사활동으로 그나마 마음을 달랬다. 함께 활동
하는 단원들도 점점 약해지는 이씨를 옆에서 격려하며 붙잡아주었다.
‘왜’라는 끊임없는 물음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하느님께서
함께 해달라는 청원기도로 어느새 바뀌면서 이씨는 큰 아들을 살릴 수 있는 방
안을 찾기에 골몰해 갔다.
사업 실패 후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던 이씨는 본당 활동을 열심히 했던 덕
에 알고 지냈던 신부들을 통해 각 성당에 다니며 묵주와 참기름 들기름을 판매
할 수 있었다. 이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1일 찻집을 해서 모은 성금을 보내준
본당도 있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부가 성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또 이씨가 사는 본오동 아파트단지 신자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성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어디에서 용기가 생겼는지 수원에 있는 군부대도 무작정 찾아갔다. 아이의
수혈과 혈소판 공급을 위해 헌혈증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헌혈증도 구했고
지금까지 계속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나 원중이에게 워낙 큰 돈이 들어가고 있으니 어려움은 여전하다. 하지
만 외롭지 않다. 하느님은 슬픔에만 빠져있지 않도록 이렇게 원군을 보내주시고
계심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성당을 방문하면 가장 먼저 찾는 성체 앞에서 이씨는 이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서 함께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용기와 위로를 얻는다.【이연숙 기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