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은 이번 호부터 교황청이 지난 3월7일에 발표한 문헌 ‘기억과 화해:교회와 과거의 잘못들’의 주요 내용을 시리즈로 요약 소개한다.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가 작성하고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의 허락을 받아 인준한 이 문헌은 가톨릭 교회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과거의 잘못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성찰과 함께 이 행위가 지니는 윤리적 사목적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
머리말
2000년 대희년 선포 칙서인 ‘강생의 신비’는 기억의 정화를 “백성들이 희년의 특별한 은총을 더욱 더 열렬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표지들 가운데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정화는 과거 잘못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새로이 평가함으로써 그 유산으로 남아 있는 온갖 형태의 폭력과 증오로부터 개인과 공동체의 양심을 자유롭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기억의 정화는 과거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범한 잘못들을 인정하는 용기와 겸손의 행위이다. 이런 행위는 ‘신비체 안에서 서로를 결합시키는 그 유대 때문에 우리 모두는 비록 개인적으로는 책임이 없지만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오류와 잘못의 짐을 짊어진다’는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덧붙여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나는 자비의 해인 올해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거룩함에 있어서는 흠이 없지만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오늘날은 물론 과거에 교회의 아들과 딸들이 범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로마의 주교가 이러한 진실하고 사심 없는 마음으로 여러 번 용서를 청한 사실은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황이 보여준 진리의 힘에 대한 조건 없는 신뢰는 교회 안팎에서 대체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유보적인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교회의 자녀들이 범한 잘못들을 그냥 받아들인다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서 교회에 편견 어린 적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행하는 비난을 묵인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거북해 하는 것이다. 이같은 상반된 반응 때문에 과거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이유와 조건 그리고 적합한 형식을 분명히 밝혀주는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제신학위원회는 이 문헌을 통해서 그러한 필요성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문헌은 과거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관련해서 ‘기억의 정화’ 행위를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이 문헌이 대답하려는 물음들은 다음과 같다. 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가? 누가 인정해야 하는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무엇이며 또 역사적 신학적 판단을 올바르게 결합시키면서 그 목표를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누구에게 과거 잘못을 말해야 하는가? 윤리적으로 시사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교회 생활과 사회에 끼칠 예상되는 결과들은 무엇인가?
따라서 이 문헌의 목적은 특정한 역사적 사실들을 조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들을 뉘우치는 데 바탕이 되는 전제들을 명확히 하려는 데 있다.
이 문헌은 1장에서는 주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2장에서는 용서를 청하는 성서적 토대를 3장에서는 신학적 조건들을 좀더 심층적으로 다룰 것이다. 과거의 행동에 대해 그 시대와 장소와 상황에 합당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판단과 신학적 판단을 정확히 결부시켜야 한다. 이를 4장에서 다룰 것이다. 마지막 장들에서는 과거의 잘못들에 대한 이러한 회개 행위들이 지니는 윤리적 의미(5장)와 사목적·선교적인 의미(6장)에 대해 고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고찰들은 가톨릭 교회에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만 자신의 잘못들을 인정할 필요성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느 종교에서나 요구된다는 점에서 이 문헌에서 제시하는 성찰들이 모든 사람이 진리와 형제적 대화와 화해의 길을 정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머리말을 끝내면서 믿는 이들이 수행하는 모든 ‘기억의 정화’ 행위의 목적을 다시 한번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다. 하느님의 진리 자체와 그 진리가 요구하는 바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우리들의 잘못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자비와 정의까지도 함께 고백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용서를 구하는 것은 특히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른 박해들을 생각할 때 특별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교황이 취하고 요청한 행동들은 모범적이며 예언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 가치는 가톨릭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 모든 종교들 그리고 국가와 민족들을 위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이를 위한 화해와 은총의 사건인 강생의 대희년을 더욱 효과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