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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평화-사순기획(2)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이들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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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리는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회는 온전한 사회가 아닙니다.”
도시 재개발 지역 강제 철거 현장에서 몸으로 저항하며 철거투쟁을 이끌어온 빈민운동가 김진홍(53·하상바오로)씨는 ‘권리’를 찾으려다 보니 ‘싸움꾼’이 돼버렸다. 그는 80년대 중반 서울 상계동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행상을 하며 하루 벌어먹고 사는 달동네 평범한 주민이었다.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 게임을 앞두고 김씨가 사는 서울 외곽의 전형적인 달동네 상계동에 대대적인 철거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지역을 생활권으로 하는 가난한 세입자 2000여가구가 한꺼번에 이동하려니 인근 집값이 폭등했다. 200만원 보증금에 월 5만원씩 내던 사글셋방이 600만원에 10만원 이상을 내야했다. 생활권을 벗어나 멀리 갈 수 없는 처지의 가난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김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모여서 동사무소와 구청을 차례로 방문 단시일에 이사갈 수 없으니 기회를 달라고 하소연했다.
“동사무소에서 동민인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더니 사람 취급도 안하더라구요.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우리도 모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해 세입자대책위원회가 꾸려졌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말없이 뒤에서 조용히 있는 편이었는데 어쩌다가 부회장에 뽑히고 말았습니다.”
그의 삶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상계동본당 수녀로 지역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던 손인숙(성심회) 수녀 빈민운동의 대부로 지난해 세상을 떠난 제정구 의원 정일우(예수회) 신부와의 ‘만남’은 그를 불의에 저항하는 ‘행동가’로 변화시켜 놓았다.
“천주교 도시빈민회 회장이던 정구 형(고 제정구 의원)이 상계동성당에서 당시 정권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가며 비판하는 강연내용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가난을 죄로 받아들이는 여러분이나 그렇게 몰아붙인 정부 모두 잘못’이라고 할 때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기 위해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문제에 눈을 뜬 거죠.”
전북 부안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상경 온갖궂은 일을 해가며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애써온 그는 이제 자신의 가족만 먹여살리면 된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을 지워버려야 했다. 세상 정의를 위해 두려움없이 싸우는 용기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철거주민들이 집단 이주한 경기도 시흥시 복음자리 목화마을 한독마을을 방문하고 비신자로서 천주교 도시빈민회에도 열심히 참여하면서 그는 주민들의 힘을 하나로 집결시켜 나갔다.
‘대책없는 이주 할 수 없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인간답게 살아보자 세입자도 사람이다’ ‘재개발 악법 철폐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세입자들의 저항이 본격화되자 재개발조합측에서 합의하자고 나왔다. 처음에 가구당 30만원씩이던 이주비가 저항이 계속되자 70만원 100만원으로 올라갔다. 이주비를 받고 떠나는 주민들이 생겨났다.
주민 ‘지도자’가 된 그에게도 회유가 들어왔다. 아파트 입주권과 2000만원 현찰을 줄테니 손을 떼라는 제안이었다. 행상을 하며 먹고살다가 철거문제 때문에 그 일마저 손을 놓은 상태인 그에게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삶의 방향이 바뀐 그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돈 때문에 결국은 지역주민들이 흩어져요. 아무리 ‘의식’이 있더라도 가족들을 생각하면 망설이게 됩니다. 가족들에게는 잔인한 행동이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싫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옳고 정의롭다’며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음을 아쉬워했지요.”
그는 철거싸움을 하다 집시법 위반 폭행 부구청장 감금 등을 이유로 9개월간 옥살이도 했다. 교도소 안에서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성서를 읽다가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동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 6―10)라는 대목에 이르자 과연 자신의 현재 행동이 올바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준비된 신자로 살다가 그는 뒤늦게 4년 전에야 세례를 받았다.

87년 공권력이 투입된 대대적인 철거가 상계동에 이뤄진 후 명동성당으로 집단 이주할 때는 600여가구로 출발했던 세입자 대책위원회가 이제 72가구만 남았다.

조직 폭력배까지 동원한 강제철거와 세입자들의 끊임없는 저항과 부상 구속의 악순환 과정에서 대책없이 밀려나야만 했던 세입자들은 89년부터 공공임대 주택 입주권이나 주거대책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개발사업 계획 결정이 고시되기 3개월 이전에 주민등록이 등재된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어서 미해당자들은 집이 헐려도 할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는 주거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 89년 북부 빈민상담소를 만들었고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준비위원장과 초대대표도 맡았다. 철거싸움이 일어나는 현장에도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이미 상계동에서 단련된 몸이어서 철거용역들과의 몸싸움도 겁나지 않았다. “배에 철판 깔았느냐” “너 하나쯤 없어도…”라며 달려드는 큰 덩치에 맞서곤 했다. 그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 재개발을 한다고 하지만 실상 달동네를 헐고 건립한 아파트보다는 예전의 달동네가 훨씬 쾌적해요. 가난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의 기준이 있는데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중산층 이상의 잣대로 가난한 사람을 재고 정책을 세웁니까. 손가락도 길고 짧은 게 있는데 하나만 갖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는 사람이 사는 ‘삶의 자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지 강요로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IMF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정부가 1가구 2주택에 대한 중과세를 없앤 것과 관련 그는 “결국 돈 있는 사람에게 집 장사하라고 투기를 조장한 게 아니냐”고 정부정책을 비판했다.
오순도순 정을 나누던 달동네 인정이 공공 임대아파트로 옮겨지면서 사라져 가는 요즘 이 아파트들이 슬럼화되어간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철거문제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져가고 있다. 그는 이제는 공공임대아파트에서 가난한 이들의 끈끈한 정을 이어주던 ‘공동체 운동’을 살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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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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