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무엇에다 비유할 수 있을까?
인생전람회장이라고 해도 될까? 귀여운 아기가 세상과 만나는 곳. 못쓰게 된 육신을 정상으로 되찾기도 하는 곳. 끔찍한 통증을 없애주기도 하는 곳. 몇 초 사이로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날 수 있는 곳. 그러나 사랑하던 사람과 원수가 되어 제초제를 마시고 혼자서 처절하게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곳. 어느 날 차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는 곳. 불효했다고 임종한 어머니를 껴안고 며칠씩 놓아주지 않는 곳. 임종 때까지 병원을 드나들어야 사는 분의 절대 필요한 곳. 고층 아파트에서 놀다가 떨어져 죽은 어린이를 안고 무조건 오는 곳….
이렇듯이 다양한 사연들이 담긴 사건이 사람숫자만큼이나 많이 시간을 다투어 벌어지고 있다. 각각의 사건의 경중을 헤아릴 수는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모두 가슴이 두근거릴 뿐이다.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교직원들의 직종도 각양각색이다. 직접 생명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직종일수록 마음의 아픔도 크리라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도 살아나지 않을 때의 무력함이 그런 것이 아닐까? 특히 우리 원목자의 공적이란 눈으로 별로 찾을 수 없으니 세속적으로 힘날 일이 무에 그리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영 육으로 고통에 젖어 계신 분들께 그 아픔 한가운데 서서 ‘아픔을 정복하자’고 그래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하면서 손을 잡으며 매순간 일어선다.
나에게도 78세의 노모가 계신데 걷지를 잘 못하신다. 조카가 다섯 명인 오빠 내외는 직장을 다닌다. 그래서 모두 아홉 식구의 살림을 지금도 어머니가 꾸리고 계신다. 주방일은 의자에 앉으셔서 하시고 무엇을 운반할 때는 바퀴 달린 의자를 사용해서 몸을 지탱하면서 옮기신다. 무력한 내가 환우들 곁에서 감히 원목자의 신분으로 일할 수 있는 용기는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 어머니 곁에서 몸으로 배워 익힌 덕분이다.
하여튼 예수님은 나를 원목자질을 잘 갖춘 세련된 상담자로서 환우들의 속마음도 잘 이끌어 내는 영혼치료사 수녀로 살게 하기보다는 마치 마당쇠 같은 소질을 더 많이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부족한 대로 즐기면서 살뿐이다. 그래도 한마디 마지막 하고픈 말은 “ 우리 병원의 회장님이신 예수님! 저를 당신 회사의 선머슴으로 채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살려주시는 날까지 우리 어머니처럼 불굴의 의지로 열심히 무슨 소임이든 하겠습니다.”
천순복 수녀(지타·성빈센트병원 원목팀)
▲다음 필자는 전주교구 오수선교본당 김봉술(아우구스티노)신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