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근무하면서 어린아이 다섯 명을 기관에 보낸 경험이 있다. 모두가 결손가정의 자녀들이었다. 미라 삼남매는 산 속에서 찾아냈다. 엄마는 가출했고 아빠는 직장에서 가끔 산 속 텐트를 찾아왔다. 큰아이가 취학 전이었으니 그들의 처지가 어떠했겠는가?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인간이 개와 다름없이 사는 모습을 보았다. 논의 물을 퍼다 마셨고 냄비에 남은 밥은 덮지도 않은 채 며칠씩 먹고 살았다. 그들은 우리 수녀원에서 얼마간 보호되다가 다른 수녀회의 기관으로 옮겨갔다.
이들을 만나게 된 계기는 안드레아 아저씨 덕분(?)이었다. 안드레아 아저씨는 교통사고로 우리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는데 유리창을 부수고 입구에 드러누워 일어나지도 않으면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면 막을 자가 없었다. 완전 깡패였다. 그럴 때 나는 그 아저씨를 호령했다. 내 말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인 역시 가출했고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래도 마음은 따뜻해 명절이 되면 송편을 싸서 찾아간 곳이 바로 그 산 속이었던 것이다.
그런 뒤 약속이나 한듯 루가 아저씨가 또 나타났다. 역시 부인은 가출했고 딸 둘이 있었다. 그도 안드레아 아저씨 못지않은 깡패였다. 병원치료비는 받을 생각을 못했다. 아저씨는 큰딸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서 혀가 너덜너덜한데도 치료를 바로 해주지 않아 나중에 암이 될 뻔했다. 할 수 없이 아저씨 몰래 아이들을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보냈으나 아저씨가 찾아내서 밤낮으로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그곳 수녀님이 심장병에 걸렸다.
별의별 협박을 받으면서도 우리가 딸들을 내어주지 못한 것은 아이들이 진저리를 쳤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성폭력까지 행사했던 것이다. 그후에도 경찰서에 가서 그를 빼내주기도 했다. 결국 그는 추운 겨울 어느 날 술을 마신 채 돌아갈 곳도 없이 딸들이 사는 도시의 길거리에서 동사했다. 아이들은 상처가 깊을테지만 피아노도 잘치는 여고생이라고 했다.
이들은 내 뇌리에서 오래도록 살아있다. 비록 그들이 사람의 품위는 모두 벗어던지고 마구 날뛰었지만 나는 그들과 함께 웃기도 했고 싸우기도 했고 화를 내기도 했다. 루가 아저씨는 내 이름을 대고 이웃집 어려운 환자를 중환자실에 입원시켜 나를 당황케 하기도 했다. 수녀원까지 찾아와서 딸을 숨긴다고 하여 횡포를 부려 나를 어른 수녀님께 혼나게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예수님으로 모시느라(?) 30대를 불살랐다.
【천순복 수녀】(지타·성빈센트병원 원목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