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가난’(Poverty of Love)이란 단어를 마음 한 쪽에 자리잡도록 해주는 이들이 가끔 있다.
어느날 공장 뒷골목을 따라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집에 좁은 방 한칸 부엌 아닌 부엌 하나에 월세를 사는 젊은 부부를 찾았다. 실직자인 남편은 피부병으로 온 몸에 종기가 나있었고 아내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가 있었다. 아이들은 5살 3살 2살 약 3개월된 아기까지 넷이었으며 모두 영양실조였다.
며칠 후 그들은 월세를 6개월 이상 내지못해 선택의 여지없이 무료로 임시 사용하는 집으로 옮겨갔다. 좁은 방이 두서개 연결된 그 집은 부분난방이 되지 않았고 형편상 기름을 채워넣을 수 없어 거의 매일 냉방에서 지냈다. 추운 겨울날 기름을 넣도록 계속 지원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어린아이들이 너무 걱정되었고 또 감기가 끊이질 않았다. 결국 갓난아기는 하늘나라로 갔다.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영구임대 아파트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때 난 그들에 대한 희망을 조금이나마 갖고 있었다. 어린 자녀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지낼 수 있다는 것과 실직한 남편이 직장을 얻어 가족을 부양하리란 희망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너무 늦은 수술로 거의 실명이 되었고 또 다시 태어난 아기를 보면서 어떻게 이들을 도울 것인가에 고심했다. 대체 대책이 없었다. 알고 있는 어느 눈먼 이처럼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들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 어려웠다.
난 이들을 보면서 몇 년전 타국에서 베트남 난민들을 위해 활동할 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그 중 한 가족에게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우려 했으나 10대의 어린 딸도 어머니와 같은 매춘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고 초등학생인 아들들은 학교조차 가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무기력하게 지내는 걸 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생활에 젖어버려 자신들의 희망과 미래가 없는 듯 사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었다.
이렇게 ‘사랑의 가난’을 체험할 때마다 때론 한계와 무력감을 느낀다. 지속적인 도움을 줄지라도 나아지리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듯 느껴질 때…. 그리고 필요로 하는 도움을 인격적으로 나누려 해도 거절당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삶에 젖어 무기력하고 대책없이 삶을 꾸려간다고 느껴질 때…. 이럴 땐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삶에 함께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절실하게 피부로 느낀다. 물론 도움을 준다는 그 자체는 말처럼 쉽지 않지만 말이다. 도움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서로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