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두문 보건진료소장 장경순 수녀(58). 수수한 외모에 흰 가운이 잘 어울리는 그녀의 웃음은 천사를 닮았다. 탄광촌 주민과 함께 지내온 22년.
“가난한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 택한 길입니다. 별로 한 일이 없는 사람을 취재하러 먼길을 왔는데 줄 것이 없어 어쩌지요.”
군청으로 보낼 연말 보고서 작성에 한창이던 장 수녀는 싫은 내색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기자를 반기는 모습도 아니었다. 그래서 대화는 짧게 끊어졌다가 어렵게 이어지곤 했다.
두문보건소는 지난 83년 문을 열었다. 당시 이곳은 동원탄좌와 삼척탄좌 등 큰 광업소의 하청탄좌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주민 대부분은 도시에서 실패해 들어온 사람들이라 ‘인생 막장’까지 밀려왔다는 좌절감에 깊숙이 젖어있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본 것은 ‘깊은 절망’이었습니다. 매일 벌어지는 부부싸움 어른들의 노름과 욕지거리 고주망태의 술주정과 춤바람…. 그리고 광산사고가 일어나 아침에 웃고나간 사람이 주검이 돼 돌아오면 마을은 온통 눈물바다였어요.”
경북 문경의 탄광촌에서 태어난 그녀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성심수녀회에 입회했다. 어른이 되면 탄광촌 주민들의 아픔을 나누며 살겠다고 다짐했던 터라 수녀의 신분으로 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조산사 간호사 의무기록사 등의 자격증을 따 78년 고한에 들어왔다.
“70년대말에는 외출했다 돌아오면 온몸이 탄가루 뒤범벅이었어요. 만일 수도복을 입고 생활했다면 매일 수도복 빠느라 아무 일도 못했을 거예요.”
장 수녀는 수도복을 입지 않는 성심수녀회의 특성이 탄광촌 사목에 큰 장점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겪었던 재미있던 일화도 있다.
“한 주민이 사복을 입고 다니며 수녀라고 ‘우기는’ 저를 가짜 수녀라고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어요. 수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던 사람들이라 사복입은 수녀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겠죠.”
장 수녀가 진료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호흡기 질환 및 위장장애 환자다. 이외에도 출산까지 거들어야 하는 입장이라 몇 년 전 수녀원에서 차를 구입해 주기 전까지는 밤에도 15km 거리를 옆집 건너가듯 걸어다녔다.
“제일 힘든 것은 결손가정의 알코올 중독 아버지들이에요. 아이들이 불쌍해서 밥이나 빨래를 해주면 이를 오해하고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리는 거예요.”
장 수녀는 “우리 주변에는 치료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한 이웃이 많다”며 ‘세계 병자의 날’이 이런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 수녀는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다. 별정직 6급 공무원인 그녀는 올해가 정년이라 11월까지만 근무한다. 그녀의 걱정은 정년퇴임이 아니라 소임을 마치고 떠나면 누가 20여명의 결손가정 아이들을 돌보겠느냐는 것이다.
“주님이 도와주시겠지요. 제가 가진 것이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과 기도말고 다른 것이 뭐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아무 탈없이 그분의 도구로 쓰인 것만도 제겐 큰 행복입니다.”【고한 〓이주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