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본당/공동체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사목일기] 잊혀지지 않는 아이들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얼마전 정규 일정을 마친 후 수련수녀로서 두달 동안 실습을 했던 시설을 방문했다. 세월의 흐름을 인식하면서도 마치 며칠만에 다시 온 듯한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곳이라 무척 반갑기도 했지만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건물이 낡아 그 당시 버려진 아기들이 있던 영아원과 성당은 사라지고 전쟁터의 폐허처럼 잔해만 나뒹굴고 있었다. 아이들 역시 다른 시설로 보내지고 없었고 그들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풀만 무성하게 자리잡았다. 붕괴의 위험이 있어 나머지 건물들도 사용을 중지한 채 철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변함없이 서있는 건 야자수와 꽃들 이였다.

필리핀 남쪽섬 일로일로시의 아실로 데 몰로라는 이곳은 120년이 넘도록 우리 수녀회가 운영해 오고 있으며 본관 길 건너에 있는 양로원은 실습중 주로 내가 머물렀던 곳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정신이상자들이 함께 지낸다. 커다란 건물이 아니라 여러 동의 각 오두막집에서 5∼6명씩 함께 생활하신다.

그 당시 계셨던 분들 중에는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계셨지만 나를 알아보고는 손을 붙잡고 우는 외팔의 할머니 언제 그곳에 왔고 언제 떠났는지 나도 잊었는데 그 날짜까지 기억하고 계시는 눈먼 할아버지 등등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잊지 않고 있음에 마음이 따뜻해왔다. 그리고 그들을 만날 수 있음에 기뻤다. 외지생활이 약간은 버거울 때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낀 곳이기에 그곳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떠나는 날 아침 그곳 빈민가정들을 돌아보면서 잊혀지지 않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나의 첫사도직이 나환우를 위한 이동진료였는데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차를 마시면서도 한번도 그들을 어렵게 느낀 적이 없었다. 생강처럼 되어버린 뭉툭한 손이나 발 일그러진 얼굴을 볼 때에도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었다.

그러나 내심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부모는 정상인데 6세 4세인 두 아들은 코밑에서 입까지 갈라져 있었고 갈리진 코바로 밑에는 이가 겉으로 나있었는데 그 모습은 내겐 처음이었고 애처롭기도 해 차마 바라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또래 아이들은 그 아이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그 아이들 또한 자신들의 모습을 의식하지 않는 듯 했다. 물론 그 아이들은 수술을 할 예정이었지만 난 그들 안에서 장애인들이나 신체적으로 불편인 이들에게 주는 차가운 시선과 뭔가 차별하는 우리네와는 너무 다른 모습을 체험할 수 있었다.

“불편하지만 불행하진 않다”는 어느 일본인 장애인의 말이 생각난다. 불편을 느끼고 사는 이들에게 ‘편견’이라는 이중적인 불편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0-01-2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9. 5

필리 2장 3절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