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맞이한 새 세기 새 천년기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이 홍수처럼 밀려와 우리를 휩쓸고 있다. 또 이윤과 효율 그리고 무한경쟁을 숭배하는 신자유주의와 과학기술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이 거대한 물결은 인간의 삶을 현저하게 향상시키는 반면 변화와 혼돈 그리고 새로운 여러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교회는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올바른 신앙적 응답을 하기 위해 철저히 자신의 신원을 확인하고 시대에 맞는 선택과 투신을 할 준비와 각오를 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꾸준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루가 10 27)는 새 계명을 살기 위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과 활동을 해왔고 근래에 와서는 이와 같은 일을 시대에 맞게 사회복지라는 방법적 틀 속에서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우리가 맞이한 새 세기는 복지에 대한 양질의 서비스와 다양한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는 사회발전 과정은 필연적으로 복지수요에 대한 자각과 함께 기대가 높아질 것이다. 이에 따라 이러한 복지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논의가 거듭되면서 종교계에 거는 기대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더욱이 새 세기의 한반도 사회복지 분야에서 가장 큰 변수는 상황 변화다. 한반도의 상황 변화는 교회 사회복지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도전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이미 북한의 기아상황은 한국교회의 개입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여러 가지 복지적 응답이 시작되고 있다. 다양한 가정 하에서의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최악의 경우 한반도의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한 긴급구호활동이 필요한 경우도 상정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새 세기에는 전 지구를 새로운 질서로 만들어가고 있는 세계화로 비롯될 여러 문제에 대한 응답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조에 따른 세계의 단일시장화와 제약 없고 국경 없는 국제통상 관계는 경쟁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계층에게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전망에서 새롭게 다가올 새 시대의 복지수요에 제대로 응답하려면 전 교회적 준비가 필요하다. 이 준비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사회복지활동을 하는 근본 이유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다. 이는 교회 사회복지활동의 정체성과 실천 동기 실천 방법 및 지속성과 헌신성을 담보하는 영성 그리고 궁극적 지향점에 관한 성찰이다.
교회가 사회복지활동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이웃’이란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친히 설명하셨듯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이들이다. 힘없고 가난하며 소외당하고 배척받아 밀려난 이들이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신 이웃 사랑은 이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선호적’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원하셨기에 이러한 계명을 주신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사회복지활동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하는 일이다. 바로 이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을 체험토록 하는 것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을 체험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하는 일은 바로 신앙의 본질적 실천 행위이기에 교회 사회복지활동은 인도주의적 박애사상에 기초한 일반 사회복지활동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전망과 간략한 신학적 성찰을 토대로 새로운 세기의 가톨릭 사회복지활동의 방향을 대략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사목과 통합적 사회복지활동의 정립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내에는 사회복지활동을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적인 것으로 인식해온 경향이 있다. 또 사회복지활동은 특별한 재능이나 탁월한 능력 특별한 소명을 받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배타적인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은 사회복지활동을 사목과는 별 상관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야한다. 이는 개인적으로도 그러하고 공동체적으로도 그러하다. 말씀의 선포 성사와 전례의 거행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가 어우러질 때 진정한 사목의 정체성이 드러난다고 본다.
둘째로 사회 통합적 사회복지활동의 정립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사는 것이 본성에 맞는다. 서로 관계를 만들어가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따뜻한 정을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갈 때 인간은 성숙하게 된다. 사회복지활동은 사회통합에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은 일반 사회공동체와 함께 살아가야 할 길을 제약하기 쉽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차원의 소외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오늘날에는 수용시설로만 복지적 응답을 할 수 없는 다양한 복지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 통합적인 가정 중심의 복지서비스 소공동체 형태의 복지 지역사회중심의 복지가 더욱 확충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새 세기의 본당 사회복지활동의 활성화는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셋째로 다양화 전문화된 사회복지활동의 정립이다.
가난한 이들의 상황이 다양하기에 그들의 복지적 요구에 응답하는 것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긴급 구호적 응답 사회 개발적 응답 사회 운동적 응답 사회복지서비스적 응답이 필요와 상황과 여건에 따라 적용되어야 하며 어느 한가지 방법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응답에서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사회 복지적 응답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교회 사회복지가 요구하는 전문성은 이론적이고 지식적인 전문성 실질적이고도 경험적인 전문성 그리고 일반 사회복지계에서 볼 수 없는 신앙적이고 영성적인 전문성이다. 다만 전문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사회복지활동을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시킬 경우에는 교회내의 수많은 잠재적 인적자원을 사장시킬 수 있으며 이는 교회 사회복지활동의 보편성을 해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기 그 기능과 역할 및 상황과 여건에 따른 ‘잠재적 사회복지사’이기 때문이다.
넷째로 체계화된 사회복지활동의 정립이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은 단일 민간 조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체계를 갖추고 있다. 교계 제도상의 체계로는 본당의 사회복지분과 교구의 사회복지회(국) 전국의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 있다. 전문성 중심의 체계로는 600여 사회복지시설과 기관 분야별 전국협의체 등이 있으며 사회복지활동에 투여되는 인적 물적 자원도 대단히 많다. 이와 같은 복지체계가 상호 긴밀한 조정과 협력 관계 속에서 보조성의 원칙에 따라 원활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체계와 함께 새 시대에 필요한 것은 연구소다. 연구소는 교회 사회복지에 관한 영성적·신학적 연구 복지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통계의 제공 정부 복지정책에 대한 연구 전문성 제고를 위한 교육과정 개발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