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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생활에 찌들어 울부짖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과 구원의 기쁨을 안
겨준 출애굽 사건. 그 구원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광야를 헤매며 고
통스러워하는 백성들에게 마실 물과 일용할 양식인 ‘만나’를 주시며 영원한
생명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일강 위로 아침 해가 솟아 오르자 순례일행은 아침부터 서둘렀다. 이스라
엘 백성들이 걸어갔던 출애굽 여정을 따라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1600년께. 이사악의 아들 야곱은 이집트를 정착지로 삼아 가족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후 이 땅은 억압과 구속으
로 점철된 고통의 장소로 변하고 만다. 이집트 왕 파라오가 집권하면서 이스라
엘 백성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모든 사람을 노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순간 자유를 빼앗기고 왕궁과 성읍을 짓기 위해 중노동에 시달리는 노예
로 전락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고통에 짓눌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소리를 들은 하느님이 세운 계획은 ‘이집트 탈출’.
430년간의 이집트 생활을 청산하던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를 되찾은
기쁨에 야훼를 찬양하며 환호성을 질렀으리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사막을 바
라보니 모세를 앞세우고 걸어가는 의기양양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그려
진다.
카이로에서 왕복 4차선 도로를 따라 1시간 20여분을 갔을까. 눈 앞에 맑디
맑은 홍해가 나타났다. 이집트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환호성을 지르던 이스라
엘 백성들이 순간 죽음의 위협을 느꼈던 그 바다다. 검푸른 빛을 띤 바다에 손
을 담갔더니 손을 집어 삼킬 듯 찬 기운이 뼛속을 파고든다.
허리를 펴고 뒤를 바라보는 순간 이집트 병사들의 말발굽 소리와 모세에게
항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음이 마치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을 들어 보니 이집트인들이 그들 뒤로 다가오고 있
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몹시 두려워 주님께 부르짖었다. 그들은 모세에게
말하였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우
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
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출애 14 10―12)
그때였다. 하느님은 모세를 시켜 바다를 둘로 쪼개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 “주님께서는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주셨도다”(출애 15
2)고 노래했다.
차를 타고 해저터널을 통해 홍해를 건너 광야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언제나 구원과 해방의 손
길을 펴시는 하느님의 출애굽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 구원은 예수를 통해 완성됐고 우리는 예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지 않는가.
몇시간을 갔을까. 광야는 끝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래와 자갈 그리
고 풀 한포기 없는 민둥산뿐. 살을 태울 듯이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 아래 사막
을 걷다 보니 타는 듯한 갈증이 엄습해왔다. 주위를 둘러봐도 물 한모금 마실
곳 없고 먹을 것 하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마름과 굶주림에 지쳐 이집트 노예생활을 그리워했던
바로 그곳이다. 만나의 기적으로 배불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체험하고도 ‘마
싸(르비딤)’에 이르러 또 목마르다며 하느님을 원망했던 그 광야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 아말렉족을 쳐부수고 돌을
내려쳐 마실 물을 주시는 능력의 하느님을 만났다.(출애 17장 참조) 그러나 그
순간뿐 항구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
33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도 그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 백성
을 선택한 하느님이 예수를 제물로 삼아 생명의 빵을 우리에게 약속했고 오늘
날 우리는 ‘살아 있는 만나’ 성체로 영혼을 살찌우고 있지만 여전히 불평불
만을 하는 것은 아닌가. 더욱이 대희년인 올해 우리는 굳센 신앙 안에서 구원과
해방의 하느님을 생활 속에서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일행은 시나이 광야를 가로질러 하느님의 산 ‘호렙(시나이산)’에 도착했
다. 하느님이 당신 이름을 모세에게 계시하고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
해 십계명을 주시면서 영원한 계약을 체결하신 바로 그 현장이다.
신앙의 선조 모세도 이 길을 걸었으리라는 생각에 새벽 1시에 일어나 시나
이산(2285m)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암흑을 헤치고 4시
간 만에 오른 정상. 모세가 40일간 기도하며 하느님을 만나고 돌판에 십계명을
받았다는 그 자리에 섰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밖에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된다….”(출애 20 1 이하)
우레 소리같이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십계명의 정신
은 무엇일까. 속박과 죽음에서 구원한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그
사랑을 나누며 해방의 기쁨을 전하라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대희년을 제대로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념에 잠겨 있던 바로 그 순간. 검은 구름 속에 묻혀 있던 산 주위가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믿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지평선을 뚫고 진홍
빛 구름기둥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 기둥이 바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
성을 인도하던 그 구름기둥이었을까. 이스라엘이 혼돈과 고통의 광야를 헤맬 때
늘 앞에서 하느님의 길을 보여주던 그 표지였을까.
마치 환상을 본 듯이 구름기둥은 해가 뜨면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하느님의 길로 인도하는 그 기둥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러가지 모양으로 언제
어디에서나 나타나리라. 신앙의 눈을 크게 뜨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해방과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 2000년 대희년이 밝았다. 하느님은 예수를 통
해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하며 일상 안에서 출애굽의 기적을
베푸신다. 다만 우리의 심안이 어두워 알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회개의
정신으로 우리 자신을 재무장하고 하느님께 인도하는 계명의 기둥을 따라 해방
의 기쁨을 세상에 선포하는 은총의 대희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주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