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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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교단 대희년 특별진단- 1 새 천년기 한국 천주교회의 도전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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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신문은 2000년 대희년과 새 천년을 맞아 ‘새 천년기 한국 천주교회의
도전과 과제’라는 주제로 대희년 기획 시리즈를 마련한다. 이 시리즈는 새 천 년기를 맞아 한국 천주교회가 안팎으로 받고 있는 다양한 도전과 과제가 무엇 인지 우리교회의 최고 사목자인 주교들의 특별 기고를 통해 들어보는 기획이다.
새 천년기 이 땅의 하느님 백성에게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기 위한 취지 에서 마련되는 이 기획 시리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편집자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오신 2000년의 대희년이 시작됐다.
새 천년기가 열렸고 새로운 세기인 21세기가 시작됐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새 로운 세기의 시작인 이 대희년을 교회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뜻깊게 맞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희년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구세주이 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 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 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 다.”(루가 4 18―19)
그리고 주님은 이 말씀대로 가난하고 병든 이웃 헐벗고 굶주린 이웃 등 고 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해주시고 그들을 실망과 좌절에서 일으켜세우셨다.
따라서 복음의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우리는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을 느 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께서 먼저 그 구원의 기쁜 소 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난한 이들이란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만이 아니다. 이들을 포함하 여 정신적으로 가난한 이들 외로운 이들 우는 이들 버림받은 이들 병약한 이 들 소외된 이들… 등 모든 불쌍한 처지에 놓인 가난한 이들이 다 포함된다. 한
마디로 구원이 필요한 모든 이들 위로를 필요로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 눈 물을 닦아주어야 할 모든 이들 버림받고 아파하는 모든 이들이 다 포함된다.
예수님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셨다는 것이다.

루가 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은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여러가지 비유로
설명해 주신다. 먼저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에서는 착한 목자는 잃지 않은 양
‘아흔아홉 마리’를 그대로 둔 채 ‘잃은 양’ 한 마리를 산과 들을 헤매며
마침내 찾은 기쁨을 이렇게 표현하신다. “이와 같이 회개할 필요없는 의인 아 흔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하실 것이다.” (루가 15 7).

이어서 ‘잃었던 은전’의 비유(루가 15 8―10)를 말씀하시고 다시 “이같 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고 하셨다. 그러신
후 다시 죄인들에게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지를 ‘탕 자의 비유’(루가 15 11―32)를 통하여 소상히 말씀하신다. 가지고 간 모든 재 산을 탕진한 끝에 거지가 되어 돌아온 둘째 아들을 아버지는 꾸짖지도 않으시 고 오직 죽었던 자식이 돌아왔다는 그 기쁨만으로 기뻐하며 껴안고 입맞추면서
종들을 시켜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서 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풀라”고 하신다. 이것은 죄인의 죄까지도 탓하시기보다 그가 당신께로 회개 하여 돌아오는 것만을 기뻐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다. 죄를 미워하지 않 거나 용인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죄와 죄의 결과인 죽음으로부터 살아나게
된 것을 기뻐하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이 사랑하 시는 아들 딸들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죄 많은 우리 인간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랑하신다. 예수 님은 바로 이 사랑의 육화이며 이 사랑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시다. 그 때문 에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죄인들을 사랑하셨다. 죄인들과 함께 식사도 하시고 어 울리시기까지 하셨다. 이리하여 예수님은 하느님이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이시고
무엇보다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해주시는 자비하신 분이심을 알려주셨다.
하느님은 과연 우리를 위하여는 당신의 외아들까지 내어주시고 우리를 용서하 기 위하여 당신을 비우시고 또 비우시는 분이시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인데 마치
그 모든 것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내놓으시고 당신의 것은 무소유(無所有)이신
분으로 아무 것도 가지지 않으신 분으로 명실공히 당신을 비우시고 또 비우신 다. 여기서 우리에게 대한 자비와 사랑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잊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빈 마음 하느님의 마음의 가난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가난을 따르시어 탄생하실 때 부터 우리를 위해 가난한 자가 되셨다. 그분은 나자렛에서 가난한 이들 가운데
그들과 함께 사셨다. 그분은 태어나실 때 말구유의 가난 속에서 태어나셨고 복 음을 전하실 때는 말 그대로 머리 둘 곳도 없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으실
때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도 빼앗기시고 맨 몸으로 가장 무력한 자로
죄인같이 천대를 받으시며 극도의 고통과 치욕 고독 속에 버림받은 채 십자가 에 달려 죽으셨다.

이리하여 예수님은 참으로 모든 가난한 자 약한 자 버림받은 자 고통으로
신음하는 자…등 보잘것없는 모든 이들의 벗이 되셨다. 몰트만이란 신학자는 이 런 말을 했다. “불타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박해당하시고
고독한 그리스도 하느님의 침묵 속에 극도로 괴로워하시는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시고 죽음에 임해서 완전히 버림받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우리의 형제이며 친구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우리들이 받은 모든 고통과 그 이상의 고통을 겪으신 분이시다.” 성 아 우구스티노도 “나 자신보다도 주님은 내게 더 가까이 계신다”고 하셨다. 그래 서 우리는 참으로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

예수님은 복음선교를 하시면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그 기적은 결코 당신 의 초인간적 능력의 과시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기적들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철저한 사랑의 솔직하고 참된 응답이었다. 사랑과 자비하신 주님은 인간의 고통 과 슬픔을 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함께 그 고통을 아파하고 나누 셔야 했다. 그 동정심의 발로가 기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 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는 이사야의 예언(이사 26
19:25 5∼6 참조)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이런 육신의 치유에 멈추지 않으시고 그것을 계기로
삼으시어 그들의 영혼까지 낫게 하시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인도해 주셨다.
“평안히 가라.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 “나는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돌아가
다시는 죄 짓지 말라.” “너의 믿?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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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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