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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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별대담]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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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오랫동안 고대하고 준비해 왔던 2000년 대희년을 맞았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매년 맞이했던 새해와는 상당히 다른 특별한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새로운 세기와 함께 대희년을 맞은 대주교님의 소감과 신년 소망을 들려 주셨 으면 합니다.
▲금년 성탄과 새해는 예년과 달리 우리에게 매우 뜻이 깊습니다. 구세주께 서 오신 지 2000년이 되는 대희년을 맞아 우리는 이러한 시점에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점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새로운 각오를 했으면 합니다.
-대주교님은 대희년과 복음화를 주제로 올해 사목교서를 발표하셨습니다. 이
기회에 교구민들을 위해 사목교서의 핵심을 간략하게 정리해 주시면 감사하겠 습니다.
▲먼저 대희년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신 자연을 당신의 목적대로 되돌려드린 다는 뜻에서 안식년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 6일간 일하시고 7일째는 쉬셨다고
해서 주간을 7일로 정하고 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에 따라 6년 동안은 경 작을 하고 7년째 되는 해는 안식년으로 정해 자연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 사드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소출은 가난한 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안식년이 일곱번 지난 다음해를 희년이라고 해서 부채를 탕감하고 그동안
빈부 격차가 났던 것을 평등한 상황으로 되돌리곤 했습니다. 결국 희년은 이러 한 불평등의 해소를 통해 형제애를 다짐하는 해입니다.
그런데 2000년 대희년은 그 희년 중에서도 가장 큰 희년이라는 뜻입니다.
2000년 대희년의 뜻은 인류가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신 목적대로 차별과 불균형 을 최대한 바로잡는 조화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년의 뜻은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의 목적을 깨달을수록
더욱 잘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어떤 상태로 태어나서 어떤 인생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복음화입니다.
그래서 대희년과 복음화는 뗄 수 없는 상관 관계가 있습니다. 구세주께서 우 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느님의 진리를 다른 모든 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복음 화인 것입니다. 이 복음화가 제대로 이뤄지면 하느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살아가 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대주교님께서 2000년 사목교서에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교회의 사명은 복 음 전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구장님께서는 이미 지난 98년 착좌 직후부터
신자 배가운동을 추진해 오셨습니다. 서울대교구가 전개해온 지금까지의 신자
배가운동의 성과를 어떻게 보시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 나가 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행복하게 살도록 마련해 주셨습 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을 거슬러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또
그 죄의 결과로 아담과 하와 사이의 관계가 벌어지고 또 하느님이 창조해 주신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가 갈라졌습니다.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돌아가야 하고 그 죄를 짓지 않기 위 해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야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죄를 짓는 것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속까지 다
들여다보시는데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면 하느님이 두려워서라도
죄를 지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느님이 우리를 다 보고 계시다는 것을 사 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또 그 하느님이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정의의 판 관으로 상과 벌을 주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를 믿는 이가 많 을수록 사회악이 적어지고 또 인간사의 관계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게 하는 복음화의 본래 의미는 교회의 확장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도덕화되고 우리 모두가 마음이 편안하 게 되는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있습니다.
-지금 대주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믿는 사람들은 더 하느님을 충실하게 믿 어야 하겠고 아울러 믿지 않는 이들에겐 더욱 주님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으 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신자 배가운동이나 복음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는 소공동체운동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대주교님께서도
여러 차례 강조하셨지만 앞으로 소공동체운동 활성화를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 야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공동체를 이루어서 살도록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는데 가족이 그 기 본 단위입니다.
사람들의 모임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피로 연결된 가족공동체를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공동체는 결속력이 아주 큽니다. 그 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단체가 있습니다. 단체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한 목적을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결속력이 적은 것이 운동경기 관람 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운동경기 관람자들은 경기 도중에는 마음을 같이하고
환성도 지르고 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뿔뿔이 흩어집니다.
여기에서 가족은 스스로의 자의에 의해 모인 것은 아니지만 피로 연결돼 있 기에 결속력이 제일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 공동체라고 합니다. 더 나아 가서 신자들의 공동체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 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친교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공동체 앞에 친교라는 형용 사가 붙는 이유는 신자들이 서로 일치하고 마음과 마음이 통할 때 비로소 교회 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성당에 와서 옆에 있는 이가
누군지조차 모르고 무관심하게 지내면 그것은 그 사람이 신앙 생활의 진수를
아직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공동체가 너무 크기 때문 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친교가 잘 이뤄지기가 어렵기에 신앙 공동체 도 대규모가 되면 인격적인 친교가 소원해져 신앙생활에 있어서 깊이가 얕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 공동체는 서로 가족처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친교 를 이룰 수 있는 규모가 될 때 신앙생활도 더 깊이있고 하느님과의 친교도 더
잘될 수 있습니다.
국가의 행정 단위를 보면 보통 1개동의 인구 3만명이 기준으로 되어 있는데
신앙공동체의 기준도 지역 인구 3만명에 하나 정도가 있어야 적당하지 않겠는 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서울대교구는 인구 10만명 이상되는 지역의 본당이
30개에 이릅니다. 이런 문제는 해소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 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본당 신설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이 어려운 경 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본당 분할이 어려운 곳에는 주임 대리제를 적극 활 용할까 생각합니다. 주임 대리제는 큰 본당에서 몇명의 신부님이 별도의 구역을
전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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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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