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가 벌레 난 쌀을 고르고 있다. 펼쳐진 신문지 위로 실에라도 꿰인 듯
뭉쳐진 쌀알들이 놓여진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본다. 약간 비틀거리면서 뻗은
다섯 개의 손가락과 손매듭 땀구멍 사이로 난 잔털 그리고 마른 뼈대를 감싸는
얇은 살거죽. 그 위로 푸스스름한 심줄이 불거져 나와 있다. 드문드문 검버섯도
피어있다. 지나가버린 시간들의 자국이다. 나는 쌀벌레 고르는 일을 도우려고
어머니 앞으로 다가 앉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손사래를 친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이 만큼이면 충분하다.”
어머니는 움켜진 쌀알들을 두 손에 가득 쥐고 베란다 난간에 뿌린다.
”아니 그걸 왜 거기다 버려요?”
나는 까닭없이 불만스럽다.
”날아들더구나.”
”네?”
”이걸 여기두니까 쪼아먹으려고... 기르는 것 마냥 온다.”
단독 주택 2층 베란다라고 해 봐야 거실 창문 앞으로 두 평이 채 안되는
공간이다. 단풍나무 분재가 소담스레 심어져 있고 직사각형의 플라스틱 화분에
는 비비추가 보라빛 꽃을 오종종 매달고 있다. 군자란의 속잎에는 주홍 꽃봉오
리가 종이처럼 구겨져 꽃대를 살짝 숨기고 있다. 푸른 이파리들 아래로 쌀알들
이 흩어진다. 그 옅은 그늘 밑 쌀알뭉치 중의 어떤 것에는 통통하게 살찐 애벌
레가 들어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것들을 뿌리며 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가 기다리는 새는 무슨 새일까? 그게 정말 새이기는 한 걸까.
주변이 조용하다. 어머니의 등 뒤로 구름이 피어나고 있다. 나는 하늘을 올
려다 본다. 하늘 가득히 흰구름이 두둥실 떠다닌다. 저기 지팡이가 간다. 저기
사슴이 간다. 저기 장화가 간다. 오래 전의 어느 여름날 내가 신었던 하얀 샌들
도 간다. 한 줄 바람이라도 부는가. 처서가 그저께였지만 아직도 무덥다.
얇은 긴 팔 셔츠 속 어머니의 어깨가 앙상하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
은 헝겊 고무줄로 간신히 묶여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늦은 가을에나 입을 검정
색 쫄바지를 어머니는 더운 줄도 모르고 입고 있다. 가느다란 정강이 위로 뼈가
도드라져 보인다. 얘야 나는 이 팔월에도 춥다. 어제 어머니가 수술 자리를 감
추느라 뒤돌아 앉아서 발목까지 오는 쫄바지를 입으며 한 말이다. 푹푹 찌는 늦
더위 속에서 어머니는 손끝이 시리다고 한다. 어머니가 감추었어도 어느결엔가
나는 이미 그것을 보아버렸다. 수술 자리는 솔직히 좀 징그럽다. 빈 젖가슴 가
운데부터 배 저 아래까지 꿰맨 자리. 탄력이 없는 물렁한 뱃살 위로 도톰히 올
라와 버린 짙은 살색의 줄. 약간 구불한 그 선을 따라 메스를 대었을 것이다.
피는 얼마나 흘렀을까. 수술 직전에 들었던 이웃 병실 사람들의 말들이 생각난
다. 누구는 열어보았더니 손 쓸 수 없게 확 퍼져 있어서 도로 덮어버렸잖우. 열
어보다. 개복.
”어머니 병원 예약 날짜가 모레인가요?”
나는 펼쳐진 신문지를 개키고 거실 바닥을 물걸레로 훔친다.
”내일이구나.”
”벌써요?”
순간 내 자신이 한심하다.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어머니 검사 결과 나오는
날을 헷갈리고 있었다니.
”오빠더러 들리라구 전화해야겠어요.”
”아서라. 길바닥에 널린 게 택시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나는 잊지 않고 오빠에게 전화해야겠다고 생
각한다. 아들 내외가 어머니의 첫번째 검사 결과보는 날을 잊고 있지는 않을 것
이다. 어머니는 힘이 드는지 벽에 기대어 앉는다. 나는 고개를 돌려 현관 앞 신
발을 본다. 운동화가 낡아 구멍이 나 있고 젖은 흙이 촘촘히 천에 박혀 있어
물에 담가놓으면 금방이라도 흙물이 배어나올 것 같다. 당장 시장에 가서 새 운
동화 한 켤레 사 와야 되겠다고 생각하는데 까만 비닐 봉지 가득히 녹즙 만들
거리가 담겨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나는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연다. 두
봉지 뿐이다. 그제서야 나는 운동화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던 이유를 안다. 하
루 네 봉지의 녹즙 봉지를 갈아 먹어야 하는데 두 봉지가 모자른다.
녹즙을 만들려면 지금 다듬고 씻어서 한 봉지 한 봉지 묶어 두어야 한다.
현관 앞으로 은박 돗자리를 깐다. 그 위로 돗나물이 쏟아져 내린다. 푸른색 작
은 언덕이 만들어지고 나는 일일이 한 가닥씩 집어들어 약간의 흙을 털어내고
실밥같은 뿌리를 손톱으로 눌러 잘라서 한쪽으로 모아놓는다. 돗나물은 한 줄에
여러 개의 꽃모양 풀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밑에마다 잔뿌리가 나 있다. 허
리가 뻐근하다. 풀 속에서 개미와 하얀 거미가 나온다. 나는 제 가고 싶은 대로
가라고 내버려 둔다. 다음은 미나리이다. 검불이나 굵은 밑대를 자르고 누런 이
파리는 따 버리면서 정리를 한다. 그러는 사이 어린 메뚜기가 나온다. 달팽이가
나온다. 무당벌레도 나온다. 빨강 바탕의 등에 검정 점박이가 너무 귀엽다. 나는
무당벌레를 집어 올린다.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낀 무당벌레는 약간의 힘만
주어도 으스러질 것 같다. 여린 생명은 거무스레한 진물을 흘리며 죽어간다. 꽉
쥐면 터져버릴 아슬아슬함이 헛 게 보이도록 만든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들여
다 보다가 내려 놓는다. 제 갈 길로 가라.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어라. 이
층 계단을 뛰어서 내려가든 창문으로 날아서 내려가든 그것은 너희들 몫이다.
나는 계속해서 나물을 다듬는다. 다음은 민들레.
”뭣 하냐.”
어머니 당신 또한 내가 뭣을 하는지 다 알고 있을 테지만 어머니는 수술
자국 때문에 오래 배를 구부리고 있을 수 없다.
”어머니 근데 쑥이 없어요.”
”밥 먹고 한 차례 더 나갔다 와야 된다.”
어머니는 부스스 일어나 당신 점심 밥을 차린다. 나는 그 밥상을 알고 있
다. 어른 한 숟가락만큼의 양에 연근 두개 무 생채 약간 감자 조림 두 조각
김 한장. 그것을 하루 네 번으로 나눠먹고 이 많은 풀을 뜯어오다니 어디서 그
런 힘이 솟아나는지 나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내가 어머니에게 드리는 말은 단
한가지이다. 너무 힘들게 애쓰지 말아요. 잠을 잘 기운은 남겨 둬야지요. 잠을
자고 아침에 두 눈을 뜰 힘은 남겨 둬야지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얘야 모르
는 소리 말아라. 먹은 만큼 힘을 모다 써 버려야 그놈이 안 자란다잖냐. 고기를
먹으면 그 놈이 젤루 먼저 먹는 다잖냐. 철저히 식이요법을 해서 놈의 싹을 죽
여야 된다. 어머니는 매우 전투적이다.
누군가의 수술을 지켜보았던 사람은 알고 있다. 그 사람이 가까운 사람이건
겉치레로 알았으나 여러 사정상 안 가 볼 수 없었던 사람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관계자외 출입금지 라는 팻말이 내걸린 수술실 문. 그 문의 이쪽과 저
쪽의 다름에 대한 고통을 떠올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곁에서
숨쉬고 있다.
”나갔다 온다.”
어머니는 모자를 쓰고 얇은 잠바를 걸쳐 입는다. 모자에 눌려 헝겊 고무줄
이 미끄러져 버리고 만다.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는 낡은 운동화에 발을 꿴다.
나는 성급히 따라나가 노랑 고무밴드로 머리카락을 다시 묶어 준다. 감색 배낭
이 어머니의 얄팍한 등에 매달리고 그 속에 든 검정 비닐 봉지와 접는 칼이 발
걸음에 따라 자그맣게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벼르고 있던 일로 나는 은행을 다녀올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