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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특집] 소설가 윤영수씨가 만난 1999년의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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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죄송합니다.
대희년의 기쁨과 3천년기의 주님을 새로 맞이하는 설렘 속에서 교회 안팎이 한창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예수님 제 마음은 영 뒤숭숭하기만 합니다. 굳게 닫혔던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당신께서 저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나오시는 건 아닌가 슬그머니 겁도 납니다.
“주님 어서 오소서.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신자들 틈에 끼어 미사보로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합송하기는 하였지만 사실은 주님 저는 주님이 제 앞에 나타나실까봐 두렵습니다. “조금만 더 계시다가 오소서. 준비가 다 된 후에 오소서.” 새로 기도문을 만들어 외우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니 오실 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그저 성당안 감실 속에 내내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갖가지 더러운 때를 다 묻히며 남에게 표독스레 눈을 흘기는 저를 보지 마시고 ‘오로지 성교회 안의 믿음만을 보시어’ 주일아침 목욕하는 기분으로 미사에 참례하여 가슴을 치는 저만 예쁘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정작 제 앞에 나타나시면 무엇을 보여드려야 하나 주님 앞에 버젓이 내놓을만한 무슨 일을 했던가 막막합니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주님 돌이켜보면 당신은 감실 속이 아니라 항상 제 곁에 계셨습니다. 외롭고 절박한 상황에서 눈물 흘리며 당신께 기도했을 때에 “내가 네 곁에 있다” 그윽한 눈으로 용기를 북돋워주셨고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고 주저앉을 때마다 “힘을 내어라”며 제 등을 밀어주셨습니다. 지나간 고통의 시간들이 그런 대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고비와 좌절의 순간마다 당신께서 제 곁에 계셨다는 감동의 기억들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제가 본 당신은 너무나 이상한 분이셨습니다. “모든 게 주님의 은총이지. 이제야 한숨 돌리게 되었어.” 자랑 겸 안도의 숨을 돌리며 이웃들과 한바탕 흥겨운 잔치라도 벌일라치면 어느새 당신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빠져나가시곤 했습니다.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 날이 갑자기 닥쳐올지 모른다. 조심하여라. 그 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덫처럼 들이닥칠 것이다(루가 21 34―35)”는 심각한 말씀만 남기시고.
모른 척 하고 있기는 했지만 주님 당신이 그 흥겹고 즐거운 자리를 떠나서 어디로 가시는지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초췌한 얼굴로 무슨 일을 하시는 지도 저는 뻔히 알고 있습니다. 햇살도 채 퍼지지 않은 이 겨울 새벽 역 앞 무료급식소에서 분주하게 국을 푸고 계시는 주님. 십년넘게 쓰던 세탁기 고장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산더미 같은 빨래를 일일이 주무르고 계시는 주님.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를 품에 안고 울음을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시는 주님.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노인들의 말씀을 매번 새 이야기처럼 듣고 진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시는 주님. 출소자들의 새 삶을 위해 그들과 함께 새벽부터 두부틀에 매달려 씨름하시는 주님. 병마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밤을 세워 병상을 지키시는 주님.
주님 저보고 당신을 따라나서라고 요구하지는 마세요.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는 했지만 저는 제가 당신의 도구로 쓰여질까 걱정됩니다. 성당 교우들과 어울려 어쩌다 한번씩 우르르 몰려가 잠깐 생색이나 내었을 뿐 저는 그런 힘든 일을 담당할 재목이 못됩니다.
묵주의 기도를 올릴 때에도 저는 한편으로 생각이 많았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라니요. 태중에 계신 예수님의 고난을 이미 예견했을 천사들이 어떻게 마리아님께 기뻐하라고 노래했을까요. 그 말씀에 마리아님은 또 어떻게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기쁘게 응답하실 수 있었을까요. 귀한 아드님의 고난 좌절을 내내 지켜보아야 했고 급기야는 그 참혹한 주검을 품에 안으셔야 했던 성모님의 일생만큼 기구한 삶이 또 어디 있겠어요. “마리아님처럼 사는 덕을 주소서.” 기도문에 씌어진 구절을 외우면서 주님 저는 주님께서 진짜로 성모님과 같은 삶을 제게 주시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제가 바란 것은 그저 아름답고 평안한 성모님의 얼굴 그 오묘한 미소를 닮았으면 하는 정도였습니다. 성녀로서의 삶 주님과의 완벽한 일치 주님께 대한 완전한 순명 그런 것들은 주님 제게 절대로 요구하지 마십시오. 저는 아닙니다. 흉내는커녕 감히 고개 들어 우러러 볼 용기도 없습니다.
주님 저를 포함하여 저희 인간들의 대부분은 정말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쓰레기들이에요. 눈 깜짝할 사이에 남을 속이고 시치미떼는 악덕 장사꾼들 겉으로는 애국자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사기에 협잡을 일삼는 교활한 위정자들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고 물어뜯어 급기야 제 앞에 널브러질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은 인면수심의 인간들. 나이를 먹으면서 배운 것은 인간에 대한 회의 환멸뿐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주님의 기도’ 구절은 주님 당신의 착오였어요. 모두 제 살 궁리에 바쁠 뿐 아무도 땅의 나라가 당신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먼저 먹지 않으면 먹혀버리는 세상인 걸요. 인간이라는 사악한 종자를 만드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키우신 것부터가 무리였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당신은 정말 희한한 분이십니다. 훼손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재앙 거대한 불가사리가 되어버린 현대과학 인간 존망 자체를 흔들어대는 생명공학의 위력까지 비인간화에 가세한 이즈음 될 대로 되어라 저희가 일찌감치 놓아버린 희망의 끈을 오로지 당신 혼자서 꼭 잡고 놓지 않으십니다.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레위 25 10)” “이 해가 희년이니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레위 25 12)”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어라(루가 4 18).”
주님 저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제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묶어둔 노예도 없으니 풀어줄 수도 없고 안과의사도 아니니 개안수술을 해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또 그윽히 저를 바라보십니다.
“이기심으로 묶인 네 손발을 해방시켜 주리라. 보고도 보이지 않는 척 눈을 감아버린 네 눈을 내가 뜨게 하리라. 세상의 허망한 것들 권세 돈 명예 허욕에 억눌린 너를 내가 풀어주리라. 자 이제 희년이다. 그만 꾸물대고 나를 따라오너라. 가장 보잘 것 없고 힘없는 형제에게로 가자.”
추운 겨울이 올 때마다 새로 태어나셔서 당신을 모시기 위해 지은 번듯한 성전이 아니라 도심의 헐벗은 골목 곳곳을 헤매시는 주님 도대체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리 집착하십니까.
“내 어찌 인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그 안에 내가 깃들여 쉴 수 있는 유일한 나의 집인 걸.”
당신의 미소는 정말 멋지십니다.

윤영수(로사리아)씨 약력
▲1952년 서울태생 ▲서울대 역사교육학과(75년 졸) ▲90년 ‘현대소설’에 ‘생태관찰’로 등단 ▲작품집:‘사랑하라 희망없이’(94년) ‘착한 사람 문성현’(97년) ‘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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