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일 37주 3일 체중 3.33Kg 체온 정상 건강 정상.
새 천년을 불과 보름여 앞둔 16일 오후 6시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성 바오로병원(청량리) 분만실에서는 또 한 생명이 태어났다.
3분 뒤. 아기가 분만실 옆에 위치한 신생아실로 옮겨지면서 신생아실 식구들은 순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건강체크
경력 6년의 오은숙(29·아녜스·서울 공덕동본당)간호사와 4년 경력의 이정애(26)간호 조무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이의 건강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몸무게와 가슴둘레를 재고 간염 예방 접종을 하는 이 모든 일이 한순간에 이뤄졌다.
‘이 세상에서의 첫발’인 아기의 발 도장도 찍었다. 아기는 번쩍 들려 개방형 인큐베이터로 옮겨졌다.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막 태어난 아기는 추위를 느끼기 때문에 4시간 정도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분만실에서 신생아실로 바로 옮겨진 아기는 별도로 목욕을 시키지 않는다.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으로 진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는 따뜻함을 느껴서인지 이내 울음을 그치고 새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아기는 행복한 아기예요. 건강하게 태어났고 또 부모도 있잖아요. 부모가 없거나 혹은 미숙아로 태어나 부모가 버리는 아기들을 보면 너무 불쌍합니다. 그래서인지 몸이 불편한 아기들을 보면 더 정이 들어요.”
‘신입생 환영식’(?)을 마친 김경(40·로사) 수간호사와 조승현(30)·오은숙·박경희(25) 간호사들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른 아기들이 20여평 신생아실을 울음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 모두 24명. 5명의 간호사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일이 안아서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간호사들의 분주한 움직임 덕분으로 이내 포만감에 만족해진 아기들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새 천년의 주역으로 살아갈 새 생명들. 아기들은 ‘처녀 엄마’인 간호사들의 손길에 따라 그렇게 평온함을 찾아가고 있었다.
퇴근 시간 잊은 지 이미 오래
한결 조용해진 신생아실. 그러나 간호사들은 잠시나마 앉아 있을 틈이 없다. 아기들의 울음 시계는 보통 30분 간격. 간호사들은 30분 후면 어김없이 아기들이 울음을 터뜨린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기들이 자고 있는 틈을 이용해 다른 못다 한 일을 해야한다.
신생아실에서 하루 사용되는 기저귀만 100여개. 분유도 대략 600g에 이른다. 그만큼 간호사들이 할 일이 많다는 얘기. 아기들이 잠자는 시간을 이용해 간호사들은 기저귀를 챙기고 젖병을 소독하고 아기들 건강 변화를 일일이 점검하는 등 바쁘게 움직인다. 이처럼 바쁜 간호사들의 생활을 반영하듯이 신생아실에는 앉아서 쉴만한 자리가 없었다.
신생아실 간호사들의 일과는 정확하지 않다. 오전 7시와 오후 4시 밤 10시 이렇게 하루 3교대지만 그 시간이 정확하게 지켜진 적이 거의 없다. 퇴근하려다가도 아기가 새로 들어온다거나 갑자기 건강한 아기가 이상을 보인다거나 하면 퇴근도 미루고 그 아기에게 매달려야만 한다. 그럴 때면 퇴근 시간을 1∼2시간 넘기기가 일쑤다.
한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이정애 간호조무사가 급히 달려가 아기를 안아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은 이제 아기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아기가 배고파서 우는 것인지 몸이 불편에서 우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상이 있어서인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세심해야 해요. 아이들이 그때그때 보내는 신호들을 파악해야 하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오랜 경력의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아기들 울음소리만 들어도 그 아기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정도입니다.”
김 수간호사는 신생아실에는 새 생명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처럼 새 생명과 함께하는 평화로움만이 있을 것 같은 신생아실에도 그늘은 있다. 인큐베이터를 의지해야만 하는 아기들. 대부분 미숙아로 심장 및 폐 관련 질환과 당뇨 등을 앓고 있어 태어나자마자 각종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아기들이다.
이 아기들 때문에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항상 촉각을 곤두세운다. 인큐베이터 아기들의 경우 잠시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과 달리 아기들은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심장이 멈추는 등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간호사들이 직접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전화를 받으면서 혹은 아기에게 분유를 주면서 동시에 다른 아기의 울음소리에도 귀가 열려 있다. 3∼4가지의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셈이다.
짬짬이 간호사의 기도 바쳐
간호사들은 오늘따라 인큐베이터 안의 ‘백설 공주’에게 신경이 더 쓰인다. 간호사들은 정이 들었지만 아직 이름이 없는 아기에게는 이름을 붙여주곤 한다. 그 백설공주가 최근 분유를 잘 먹지 않고 자꾸 몸이 약해져 가고 있다.
오 간호사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된 백설공주의 입에 튜브를 삽입했다. 젖을 빠는 기능이 약한 백설공주에게 억지로 분유를 주면 위가 아닌 기도로 넘어가 질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기의 건강이 조금만 나빠도 쉽게 포기하는 부모들이 많아요. 미숙아가 태어나면 바로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하는 부모들을 보면 그 아기가 너무 가여워 보입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기들은 표정까지 슬퍼 보여요.”
간호사들은 아기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기들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한 간호사들의 표정은 밝았다. 오늘은 모든 아기의 상태가 양호하기 때문.
어느 정도 한가해진 간호사들은 함께 모여 간호사의 기도를 바쳤다. “오늘 하루도 당신 도구로서 사랑과 치유의 전달자 되게 하소서.” 간호사들의 새 천년 희망은 그렇게 아기들의 건강을 비는 기도 속에 녹아 찾아오고 있었다.
신생아실이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이제 막 태어난 또 다른 한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며 신생아실로 들어오고 있었다.【우광호 기자】
□ 취재후기
- 해맑은 얼굴의 아기들에게서 새로운 천년의 희망을 보았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크리미아 전쟁터에서 핀 꽃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의 희생 정신을 되새기는 성스런 의식. 가관식을 하는 날 간호사들은 액세서리도 화장도 하지 않고 그들만의 선서를 한다. 그들은 이날 가장 깨끗한 얼굴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촛불을 켠다. 간호사들의 이런 순수한 마음은 성바오로 병원 신생아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모두 얼굴이 밝았다.
분위기 메이커 조승현 간호사가 “우리들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밝게 사는지 느껴지지 않으세요”라고 말하자 간호사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놀랐는지 아기들이 동시에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간호사들은 웃음을 삼키며 아기들에게 달려가 일일이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아름다워 보였다. 그 간호사들의 깔깔대는 재잘거림과 아기들의 울음소리는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기들은 곧 조용해졌다. 신생아실 간호사들의 웃음과 그들의 품안에서 편안함을 되찾는 아기들의 해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