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드 푸코(Chales de Foucauld 1858∼1916)
- 예수의 작은 형제회·작은 자매 전교회 설립
황량한 사막에서 나자렛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았던 ‘사막의 성자’.
프랑스 귀족가문 출신의 푸코는 모든 부와 영예를 버리고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입회한 이후 수도회에서의 삶도 사치스럽다며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 15년간 가난한 이교도들의 노동자로 살았다.
그는 예수가 사람들 가운데서 머물기 위해 30년간 노동과 기도 속에서 살았던 나자렛의 삶을 재현하는 것을 영성의 출발점으로 삼아 가장 가난하며 평범하게 살았다.
사후 그의 영성을 따라 ‘예수의 작은 형제회’와 ‘작은자매전교회’가 설립됐으며 현재 작은 형제회 280개 수도원 회원들과 작은자매전교회 회원 1500여명이 전세계 곳곳에서 가난한 삶을 통해 그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교황 요한 23세(Po
e John ⅩⅩ &29241 1881∼1963)
-교회 현대화 위해 2차 바티칸공의회 소집
교회가 급변하는 사회 속에 대처하기 위해 교회 일치와 현대화를 목표로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그는 짧은 재위기간(1958∼1963)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권위주의자가 아닌 사목자라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요한 23세는 교회가 다양한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교회일치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냉전시대에 미·소간 화해의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 그는 특히 사회교리를 다룬 회칙 ‘어머니요 스승’과 ‘지상의 평화’를 통해 당시 여러 국내외적 문제와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는 인류의 공동생활을 위한 실천적 중재자와 해설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복음적 검소함과 겸손한 모습을 지닌 착한 목자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영원히 기억되는 교황이다. 현재 그의 시복절차가 진행중인 가운데 교황청은 내년 4월 시복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테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 1881∼1955)
-진화론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현존을 역설
프랑스의 신학자·철학자·인류학자인 샤르댕은 예수회 신부이면서 창조자 그리스도를 내세운 진화론 이론을 펼친 고생물학자이다.
고생물학을 통해 하느님께 봉사하는 길을 택한 샤르댕은 1920년부터 파리의 가톨릭학원에서 지질학과 생물학을 강의했으며 이후 중국과 몽골지역의 고대 유물 발굴에 참가해 업적을 남겼다. 그는 많은 저서를 통해 생물학과 인류학에 입각한 철학사상을 구축했다.
그는 인간 지식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생물학 사회학이 모두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단순히 한 분야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사고할 것을 말했다.
샤르댕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진화론을 인정하면서도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음을 역설한 과학자요 신앙인이었다.
▲비오 신부(Padre Pio 1887∼1968)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오상 체험
‘오상의 비오 신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발과 손에서 피를 흘린 것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카푸친 수도회의 비오 다 피에트레시나 신부는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교회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10년 사제서품 후 1918년부터 그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상흔이 생기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런 이상한 현상에 대해 교황청은 1930∼40년대에 그의 사제직의 대부분을 정지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비오 신부의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계 각지에서는 그를 보기 위해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 비오 신부는 오상의 아픔을 인내한 채 하루 10∼12시간씩 고해성사를 주는 등 사람들을 진정한 회개로 이끌었고 많은 순례자들의 헌금으로 지역민들을 위한 병원을 세워 그곳에서 일했다.
‘행동이 아닌 열정을 지닌 성인’이라 일컬어졌던 비오 신부는 지난 5월 시복됐다.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 1891∼1942)
-유다인과 그리스도인들의 화해 위해 희생
무신론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철학자에서 신앙인으로 변화된 삶을 살다 결국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한줌 재로 사라져 버린 유다인.
현상학을 창시한 철학자. 훗설의 조수로 일하며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현대철학의 제일선에서 큰 활약을 했던 에디트 슈타인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자서전’을 읽고 가톨릭으로 개종 이후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해 수녀가 되었다.
에디트 슈타인 수녀는 십자가의 성 요한 성녀 데레사 등 교회 사상가의 영성 및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반유다정책으로 체포된 그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유다인과 그리스도인들의 화해를 위한 희생으로 죽음을 맞았던 그녀는 지난해 10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됐다.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
- 노동자 권익 대변과 전쟁반대운동에 앞장
‘미국의 마더 데레사’. ‘가난한 이웃과 힘없는 노동자의 대모’로 불리는 도로시 데이는 지난 100년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톨릭 신자로 꼽힌다.
급진적 사회주의 저널리스트였던 그녀는 가톨릭 노동자 단체를 설립하고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한 신문 ‘가톨릭 노동자’를 발행했으며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반전운동에 참여하는 등 각종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또 ‘환대의 집’을 설립해서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무료급식을 실시했다.
특히 70세가 넘어서까지 피켓을 들고 전쟁이나 각종 불의에 항거하는 시위를 벌었으며 수차례 감옥에 갇히면서도 매일 미사는 물론 성서묵상과 묵주의 기도를 바치는 등 행동하는 신앙인의 표본이었다.
도로시 데이가 1910년대에 시작한 사회운동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
-신학 발전·현대의 교회상 정립에 큰 기여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인 예수회 칼 라너 신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비가톨릭인 비그리스도인과 함께 하는 개방과 대화의 공의회가 될 수 있도록 일조 했으며 가톨릭내 신학·철학·역사·영성 분야뿐만 아니라 종교계와 사상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라너는 1922년 예수회에 입학했고 인스부르크에서 신학박사를 받고 빈과 프라하 수도원 신학교 뮌헨대학 등에서 교의신학·교의사·종교철학을 강의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하느님이 피조물인 인간의 실존 안에 스스로 나타나 보이고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비신앙인들도 그들 마음 안에 나타나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계시신학를 구축했다.
라너 신부는 수많은 저서와 강연을 통해 신학의 발전과 교회일치를 도모하고 현대의 교회상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마더 데레사 수녀(Mother Theresa 1910∼1997)
-온 세계인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어머니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살아있는 성녀 만인의 어머니’. 이름에 따라붙는 수식어만큼이나 데레사 수녀는 전 생애를 가난과 고통에 짓눌린 이들을 위해 온전히 바쳤다.
데레사 수녀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살고 싶어 봉쇄수녀원을 떠나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무기로 인도의 거리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