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모세의 출애굽부터 예수 탄생과 부활까지 이어지는 구세사의 현장을 찾아 대희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획시리즈 ‘대희년 성지 르포’를 2회에 걸쳐 마련한다. 서울―카이로 노선 재취항을 기념해 (주)대한항공 협찬으로 이뤄진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대희년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죽고 부활한 땅 이스라엘. 그래서 신앙인에게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살아있는 성지다.
그런 탓에 대희년을 맞아 요즘 이스라엘은 순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느님이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과 부활로써 모든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한 역사적 사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이다.
어느 곳 하나 성지 아닌 곳이 없는 거룩한 땅 이스라엘에서 특히 순례객이 모이는 곳은 예루살렘에서 8km 정도 떨어져 있는 베들레헴.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가 태어난 이곳은 해방과 구원의 기쁨을 드러내는 대희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차를 타고 베들레헴으로 가면서 머릿속은 2000년 마구간으로 달려간다.
호적등록을 하러 고향 나자렛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들어선 요셉과 마리아. 해가 저물고 해산의 진통이 시작됐지만 묵을 방이 없어 마구간을 찾아들어가 핏덩어리 아들을 낳았다. 인류 구원과 해방이라는 엄청난 사건의 첫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광야에서 양떼를 지키다 구세주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목자들뿐.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피부색이나 국적과 상관이 없다.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속한 베들레헴은 순례객을 유치하기 위해 주차장 숙박시설을 짓기에 여념이 없다. 마치 공사장을 방불케 한다.
먼지 날리는 거리를 지나 예수 탄생지에 이르니 요새처럼 생긴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순례객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한눈에 ‘여기구나’하고 직감했다. 중앙제대 밑으로 난 동굴로 들어가 순서를 기다렸다.
차례가 되어 무릎을 꿇고 쳐다본 땅에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했다’라는 문구가 적힌 은색별이 장식돼 있었다. 하느님이 핏덩어리 인간이 되시어 구원 업적을 시작한 그곳이었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드디어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어 섰다.”(마태 2 2. 9)
각기 자기 나랏말로 기도를 드리는 순례객들의 웅성거림을 뒤로 한 채 갈릴래아 호수로 발길을 옮겼다. 나자렛에서 30여년을 살다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생활을 시작한 예수의 주활동 무대였던 갈릴래아 호숫가. 국토의 90가 사막인 이스라엘 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호수 안으로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출렁이는 은빛 물결의 아름다움도 잊은 채 상념이 계속됐다. 예수가 제자들을 부르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는 기적을 행하고 풍랑을 말 한마디로 잠재우며 물위를 걸으신 바로 그 자리. 2000년을 이어 변함없이 흐르는 이 물은 그 현장을 목격했으리라.
오늘날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는 예수가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지켜 돌보시오”(요한 21 15 이하)라고 말하며 수위권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베드로 수위권 성당’ 호숫가 언덕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마태 5 3―12)고 설교하신 것을 기념하는 ‘진복팔단 성당’ 등이 자리잡고 있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예수는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편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죄인으로 치부하는 창녀와 세리 환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을 어루만졌다. 갈릴래아 순례를 마치고 나자렛으로 이동하면서 나자렛의 유다인 회당에서 행한 예수의 설교가 가슴 깊이 자리잡는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는 해방을 눈먼 사람들에게는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 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로다.”(루가 4 18―19)
그렇다. 예수는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며 지금이 구원의 ‘때’라고 외치셨다. 그 ‘때’ 즉 구원과 해방의 ‘때’ 주님의 은총의 ‘때’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교회는 이를 기념해 그리스도 탄생 2000년이 되는 해를 기쁨의 대희년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자렛은 분쟁이 끊이질 않아 순례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구세주 잉태 사실을 알려준 것을 기념해 세워진 ‘성모영보성당’ 바로 앞 공터에 회교도들이 사원을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유다교 그리스도교가 함께 모여 있어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는 안내자의 말에 ‘예수는 인류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발길을 돌려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를 환호하던 군중들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웅장하게 서있는 예루살렘 성벽을 지나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갔던 길을 따라갔다. 지금은 시장 골목길로 변해 예전의 자취는 사라지고 십자가를 지고 간 예수의 행보를 14곳으로 나눠 기념하는 장소와 성당 몇 곳만이 남아 있다.
예수의 행보를 따라 예루살렘에 입성한 순례 일행은 겟세마니 동산으로 올라갔다. 죽음을 직감한 예수가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아버지께서 하고자 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루가 22 42)라고 기도하며 피땀을 흘렸던 바로 그 현장에 올라서자 둘레 10m 안팎의 거대한 올리브나무 여덟 그루가 눈에 띈다.
적어도 2500∼3000년 전 나무라는 안내자의 말에 순례객들은 다시 한번 나무를 쳐다봤다. 예수가 피땀 흘리는 것을 목격한 생물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는 말이 없다.
겟세마니를 뒤로하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신 골고타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예수무덤성당’에 들어가다 발길이 멈춰진다. 바닥에 평평한 돌이 놓여 있고 수많은 순례객이 입을 맞추고 있다. 예수의 시신을 내려 염을 했던 곳이다. 순례객들의 뒤를 이어 입을 맞추는 순간 향긋한 냄새가 가슴을 파고든다. 예수 시신에 발랐던 향유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성당 관리인이 냄새 보존을 위해 향유를 수시로 붓고 있다는 안내자의 설명이 귓전으로 들렸지만 그게 중요한가.
성당 깊숙이 들어가니 그 옛날 무덤 위에 지어진 작은 돔이 있다. 허리를 굽히고 들어간 예수의 무덤.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을 찾았다가 예수 부활 소식을 들었던 그 무덤이다. 굽힌 허리를 펴고 쳐다본 무덤 안에는 2000년 전처럼 시신이 사라지고 없었다.
“왜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습니까?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