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6·25 전쟁을 전후해 인민군에 의해 강제 피랍 또는 구금된 상태에서 순교했거나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직자·수도자·신학생·평신도의 수가 전국적으로 12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쟁이 끝난 1953년말까지 파악된 순교자는 초대 교황사절 방일은 주교와 광주지목구장 안 파트리치오 몬시뇰 제6대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 등 고위 성직자를 포함해 덕원·함흥 44명 평양 28명 서울 23명 춘천 6명 대전 10명 광주 5명 등 12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대부분은 전쟁을 앞두고 북한이 대대적인 종교탄압을 가할 당시 북한 지역에서 체포돼 총살 또는 행방불명 등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앙을 굽히지 않다가 희생당했다.
특히 제6대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는 북한정권이 1948년 5월7일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을 급습 사우어 주교를 비롯해 독일인 성직자·수도자 전원과 한국인 신부 4명을 체포하고 수도원을 폐쇄하자 공산정권에 강경한 항의문을 보내고 면담을 요청해 오다 1949년 5월14일 납치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상태다.
또 춘천 양양본당 주임이었던 이광재 신부는 해방 직후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을 남쪽으로 도피시킨 후 자신은 오히려 더 북쪽인 평강으로 올라가 미처 월남하지 못한 신자들을 돌보다 북한정권에 의해 1950년 10월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1950년 9월16일을 전후해 북한군에 의해 북쪽으로 끌려간 명동본당 총회장 정남규(요한)를 비롯해 청년회장 조종국(마르코) 부회장 송경섭(루가) 경향잡지 김한수(로렌조) 명동성당 건축 50주년 기념 대보수공사 총감독 김정희(안드레아)도 현재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주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