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봉세관의 잡세 징수에 항의하던 제주도민의 원성이 교세를 확장중이던 천주교 신자에게로 비화 천주교인 수백여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제주도에서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제주도 대정군수 채구석과 유림의 좌수 오대현이 제주도민을 모아 결성한 ‘상무사(商務社)’는 1901년 5월28일 프랑스 선교사 라르쿠 신부를 비롯해 천주교인들이 10일간 사수하고 있던 제주성을 함락하고 300여명(조정 추정)의 천주교인을 관덕정 앞에서 처형했다.
1899년 두명의 프랑스 선교사가 파견되면서 시작된 제주지역의 천주교는 주로 화전민층과 일부 향리층 유배인들을 중심으로 전파돼 왔다. 그러나 외래 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관·토착 지배세력 및 제주도민들과의 충돌이 발생하면서 교회의 전교활동은 전체 도민들의 반감을 샀다.
특히 천주교의 전파로 향촌사회 내부의 기존 질서가 흔들리면서 도민들은 교회를 하나의 세력으로 여기게 됐으며 부당한 징수로 토착세력의 반발에 부딪힌 봉세관 강봉헌이 세금을 징수하기 어려워지자 자신에게 우호적인 일부 교우들을 마름(징세담당자)으로 기용하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교·민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켰던 ‘오신락 노인의 자살 사건’이 터져나왔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오 노인 죽음의 원인이 교회측에 있다”는 소문이 민간에 널리 확산되면서 도민들의 교회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이후 지난 5월6일부터 이재수를 중심으로 한 민군 상무사와 교우들이 충돌하기 시작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이런 충돌을 조정해야할 지방관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교회측에서는 라르쿠 신부가 직접 타협에 나서려고 했으나 최형순 등 강경한 교우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돼 버렸다. 한편 민군의 경우에도 장두들은 타협을 원했으나 흥분한 군중을 억제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주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