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출판사 설립
조선교구 제6대 교구장 리델 주교가 일본 나가사키에 설치했던 성서활판소(가톨릭출판사 전신)가 1886년 한불조약 이후 조선으로 이전되어 새출발했다. 책임자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코스트 신부이며 교회에서 읽혀지던 필사본 목판본 등을 활판본으로 다시 간행했다.
◎ 예수성심신학교 개교
1885년 강원도 원주 부흥골에 설립됐던 신학교가 서울 용산 원효로로 옮겨져 1887년 예수성심신학교로 다시 문을 열었다. 초대교장으로 리우빌 신부가 취임했으며 중등과 3년 철학과 2년 신학과 3년 과정으로 운영됐다.
◎ 교민·선교조약 체결
한불조약 이후 끊임없이 발생해온 천주교와 주민들 사이의 대립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교회와 조선 정부는 교민조약(1899년)과 선교조약(1904년)을 각각 체결했다. 내용은 선교사는 행정에 관여할 수 없고 행정관은 선교사의 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담고 있다.
◎ 대구대목구 신설
1911년 조선대목구가 서울대목구와 대구대목구로 분리되어 초대 대구교구장으로 드망즈 주교가 임명됐다. 대구대목구의 신설은 급격한 교세신장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관할한다.
◎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1931년 조선천주교회 창립 10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졌다. 서울교구는 9월26일 백주년 기념 축하회를 필두로 기념강연회 조선공교회 역사재료 전람회 청년회 연합회 총회 등을 개최했으며 조선 천주교력사를 발간하기도 했다. 대구는 제등행렬을 비롯해 소년부의 유대철 치명극 등을 선보였고 이 해에 초대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가 내몽고 서만자에서 조선으로 이장됐다.
◎ 조선인 첫 주교 탄생
노기남 신부가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서울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942년 12월20일 명동대성당에서 주교성성식을 가졌다. 이번 임명은 조선총독부가 외국인 교구장을 모두 일본인으로 바꾸려는 종교탄압정책을 펴자 서울교구장 라리보 주교가 노 신부를 비밀리에 교황청에 추천함으로써 이뤄졌다.
◎ 1945년 한국교회 현황
신자수 183 666명 교구 9개 한국인 신부 149명 외국인 신부 102명 수사 56명 한국인 수녀 332명 외국인 수녀 50명 신학교 1개 남녀학교 50개 병원 9개 보육원 3개 양로원 5개【남정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