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안중근(31·토마스)이 1909년 10월26일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방문한 이토오 히로부미(69·전조선 초대통감)을 저격했다.
안중근은 권총으로 이토오 히로부미에게 세 발을 명중시키고 함께 수행하던 가와카미 하얼빈 총영사 모리 궁내대신 비서관 등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는 저격 직후 “대한만세(코레아 후라)”를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3번 절규하듯 외치다 러시아 헌병에 의해 체포됐다.
안중근에게 저격당한 이토오 히로부미는 곧 러시아 장교들과 수행원들에 의해 열차내로 옮겨져 의사의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약 30분 후 숨졌다.
러시아 헌병대에 체포된 안 의사는 하얼빈역 헌병대 분소에서 러시아 검찰관의 심문을 마치고 오후 8시께 일본영사관으로 넘겨졌다. 그는 러시아 검찰관의 심문에서 “성명은 안응칠(安應七) 직업은 대한민국 의병 참모중장”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대동공보사’ 유진률 사장으로부터 거사를 위한 자금과 권총 3정을 지원받은 안중근은 10월24일 하얼빈역을 사전 답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답사 후 함께 거사를 준비해온 우덕순에게 5∼6개의 탄환을 건네주었는데 이 탄환 가운데 끝에 십자가형이 새겨진 탄환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황해도 해주 진사 안태훈의 3남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난 안중근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됐으며 파리외방전교회의 빌렘 신부를 만나 성서를 읽고 교리를 익힌 후 19세 때인 1897년 세례를 받았다.【이주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