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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거지 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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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또 구유를 꾸며야 합니다. 신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한 구유 만들기가 올해로 거의 20년째입니다. 워낙 일복을 타고난지라 남에게 못 맡기고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전국의 모든 본당에서 연중 행사로 구유 만드는 일을 하고 있을 듯 싶습니다.

저는 본당 주임신부가 되면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성탄 구유를 좀더 아기 예수님 취향에 맞게 꾸며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주임신부가 되자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교우들에게 이번 성탄에 아기 예수님이 오시면 어느 가정에 오실까를 생각해 보게 하였습니다.

2000년 전 집도 없이 마구간에서 초라하게 탄생하셨던 예수님 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가난한 사람 소외받는 이들의 친구이셨던 예수님 그분이 이제 이곳에 오시면 과연 어느 가정에 오실는지를 생각하여 지금 우리 주변에 가장 헐벗고 고통스러운 이웃에게 찾아가 작은 선물을 드리고 그 가정에서 버리는 물건들 비닐 봉지 슬레이트 조각 쓰레기 등을 가져와 그것으로 엉성하게 엮어 구유를 꾸미는 것이었습니다. 매년 많은 자금을 들여 화려하고 예쁘게 치장한 구유보다는 진정 아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구유는 그것이겠다는생각이었습니다.

교우들은 잘 실천해 주었습니다. 온갖 쓰레기(?)를 다 가져왔습니다. 그것들로 지저분한 구유가 꾸며졌습니다. 이제까지 만들어진 어떤 구유보다도 가장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쓰레기 거지 구유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성탄 자정미사 중 아기 예수님을 거지 구유에 안치할 때 이제껏 수없이 만들었던 구유보다는 가장 마음 따스한 구유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가장 마음에 드실 구유 사랑의 구유가 교우들의 사랑 실천으로 꾸며진 것입니다. 그 구유는 세상 그 어떤 구유보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그 구유를 꾸미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성전을 지어 첫 성탄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아기 예수님 탄생을 맞이하는 올해 성탄절에는 구유를 조금은 예쁘게 짓고 싶습니다. 그래도 아기 예수님께서는 제 마음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이제 제 귓전에는 천상의 캐럴이 은은히 울려옵니다. 시인 김성춘님의 ‘천사’라는 시의 끝 부분입니다.

“그는 주기도문도 몰랐습니다./그는 성경 한줄도 읽지 않았습니다./그는 천국에 핀 들꽃보다 찬란했습니다./”

배광하 신부(춘천교구 갈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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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장 12절
아버지가 아끼는 아들을 꾸짖듯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꾸짖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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