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습니다. 밤은 자꾸 세력을 넓힙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밤이 늘어나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때가 되면’ 밤은 줄어들 것임을 체험으로 알고 그때가 오길 기다리며 어둠을 견딥니다.
그 오랜 기다림의 시기가 대림 4주로 압축되어 표현되었습니다. 교회는 여기에서부터 한해의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문제 1) 늘 시작에는 삼가고 설레는 마음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오랜 순례 끝에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뵙고 또 해마다 그분을 뵈러 시온을 찾아 가듯이. 그리스도인은 우리 앞에 놓인 주님의 오심과 구원하심(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다리며 한해를 시작합니다. 그 한해는 그리스도인이 체험하는 ‘시간의 순례여정’이랄 수 있습니다. 그 여정을 밝히는 횃불이 주님의 말씀입니다.(문제 2)
임을 기다리며 순례를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자세는 대림 전례로 표현됩니다. 제대 앞에 성당 곳곳에 마련된 대림환은 대림시기의 특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표징입니다. 한겨울에 보는 푸른 사철나무나 상록수 잎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언제나 싱싱하고 충만한 그분의 생명을 뜻합니다. 이 나뭇잎을 엮어 둥글게 만든 것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 가운데에 네개의 초가 마련됩니다. 그 초들은 빛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초에 불이 밝혀집니다.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 자기 삶을 성찰하며 주님께 돌아서는 이 정성껏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빛은 점차 분명해지고 초의 색깔은 점점 밝고 맑아집니다. 그렇게 준비하며 기다리는 이들에게 이 시기는 괴롭고 짜증나는 시기가 아니라 “간절하고 감미로운 희망의 시기”(전례력과 축일표에 관한 일반지침 제39항)가 됩니다.(문제 3·4) 그러면서도 대림시기 동안 화려한 장식을 피하고 대영광송을 하지 않음은 주님의 오심을 삼가며 기다리는 오롯한 마음의 표현입니다.(문제 5)
다시 살펴보는 대림시기
말씀들 대림시기에 선포되는 독서와 복음 말씀들은 이 시기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대림시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성격이 나뉩니다. 대림 제1주와 제2주는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도록 초대하는 시기로서 종말에 관한 말씀이 주로 선포됩니다.
대림 제1주일 독서에서 이사야는 바빌론 유배 이후의 어둡고 힘든 현실 속에서 하느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문제 6) 우리도 우리 현실의 아픔을 느끼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이사 63 16)께 울부짖고 있는지요?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은총에 대해 깊이 감사하면서 우리 삶의 구원이 그분으로부터 옴을 굳게 믿고 희망으로 기다리도록 촉구합니다.(문제 7) 복음에서 마르코는 종말의 표상을 통해 늘 깨어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일러줍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종말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이는 이미 우리의 어두운 현실 속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체험하고 그분의 구원사업에 동참하며 장차 이루실 완성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며 책임있게 사는 것입니다.(문제 8)
대림 제2주일에는 우리의 호소를 들으신 하느님께서 장차 직접 구원하시리라는 위로와 희망의 말씀을 듣습니다.(제1독서 문제 9) 깊이 아파한 이라야 이 말씀을 깊이 듣습니다. 아울러 20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주님의 재림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뜻을 밝혀줍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다려주시는 것이지 결코 늦장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즉 더 늦기 전에 회개하라는 촉구입니다.(제2독서 문제 10) 복음은 주님의 오심을 예고하며 회개를 부르짖는 세례자 요한의 소리를 선포합니다. 그 외침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의 활동 속에 담겨야 합니다.(문제 11)
대림 제3주와 제4주는 가까운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대림 제3주일에 사제는 장미색 제의를 입어 주님의 오심이 임박한 기쁨을 드러냅니다. 이사야는 주님의 영을 받은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기쁨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제1독서 문제 12) 그 기쁨의 때를 누리는 그리스도인은 그분이 다시 오실 그때까지 늘 기도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도록 초대됩니다.(제2독서 문제 13) 과연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영원히 시간 속에 들어오시어 우리와 똑같이 되셨습니다.(복음 문제 14)
대림 제4주에 오실 그분이 누구신지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집니다.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그의 후손 중에 영원히 다스릴 왕이 오십니다.(제1독서 문제 15)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심오한 진리와 신비가 드러났음을 알리며 하느님을 찬양합니다.(제2독서 문제 16) 마침내 그때가 이르렀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아들이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이제 인류 역사에 들어오시는 하느님의 구원은 그분이 선택하셨던 마리아의 동의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실 것입니다.(복음 문제 17)
대희년을 맞으며 지난 삼년간 성자와 성부 성령 등 삼위일체의 신비를 묵상하며 준비한 대희년이 드디어 이번 성탄부터 시작됩니다. 희년의 뿌리는 구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곱번째 안식년이 끝난 다음 50년이 되어 일곱째달 십일(이 날은 ‘대속죄일’입니다)부터 일년간 희년이라는 특별한 시기를 보냈습니다.(문제 18) 희년에는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동안 왜곡되었던 모든 관계를 바로잡도록 지시되었습니다. 즉 하느님이 주신 땅을 쉬게 하며 빚 때문에 종이 된 형제들의 자유를 회복시키고 삶의 터전인 땅을 되돌려주게 하였습니다.(문제 19)
그리스도교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희년의 정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고 성취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자렛 회당에서 희년을 “주님의 은총의 해”라 규정하시며 “오늘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루가 4 19. 21)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문제 20) 그분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하여 인류의 구속이 이루어졌으니까요.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희년(또는 성년)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희년 정신을 포괄하되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비춰 재조명되었습니다. 가령 희년의 지정도 구약성서처럼 햇수에 따라 결정되기보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하여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서기 2000년은 예수께서 오신 지 2000년을 기억하고 그분의 구속을 기념하는 대희년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희년은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한 하느님의 은사와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 그리고 특별히 성지순례를 강조하였습니다. 희년이 지닌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을 배제하지 않되 한층 영성적 차원을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문제 21) 이에 따라 대희년인 2000년에도 교회는 주님의 은사를 받기 위한 조건으로 고해성사와 영성체 교도권이 지정한 성지 순례 교황님의 뜻에 따른 기도(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바치기를 제시하였습니다.(문제 22)
대림이나 희년은 단지 때마다 반복하여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만나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결정적인 때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오랜 기다림이 실현되고 체험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