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들어 우리 교회는 대규모 행사인 81년 조선교구설정 150주년 신앙대회와 3년 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이 두 행사는 교회 밖으로 ‘천주교’를 알리는 가시적인 효과는 거두었지만 일회적인 행사로 그쳤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면서 이 대회를 단순한 행사로만 그치지 말고 대회의 정신인 성찬의 삶을 생활실천운동으로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시돼 한마음한몸운동이 탄생했고 운동조직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할 당시 전국 규모로 시작된 한마음한몸운동은 성체대회 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이 운동을 각 교구별로 전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현재 서울대교구만이 운동본부 조직을 갖고 있어 10년이 지난 현재 신자들의 정신운동 생활실천운동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현재 장기기증운동 우리농촌살리기운동 환경운동 생명운동 해외원조 활동을 펴고 있으며 입양운동은 사회복지회로 넘겨져 성가정입양원에서 전개하고 있다.
▲장기기증운동:우리 교회에서는 윤형중 신부가 1979년 선종하면서 안구를 기증한 첫번째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부모가 물려준 몸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유교적 사고방식 때문에 이웃에 자신의 몸의 일부를 나눠주는 장기기증에 대한 의식은 교회안에 조차 부족했다.
따라서 장기기증운동은 처음에는 신자들에게 파고들기 어려워 안구기증 중심의 헌안운동으로 서서히 전개되다가 지금은 장기기증 나아가 시신기증으로 확산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장기기증운동은 특히 97년 최창무(당시 서울대교구 보좌) 대주교와 사회사목부 사제들의 기증약속과 이어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와 사제단의 기증약속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주춤한 상태에서 증가추세로 돌아섰다. 이는 사제들의 행동이 평신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시켜 준 사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기기증을 약속했지만 등록자 대부분이 신자들로 교회 안에 머물고 있어 사회로 파급시키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
한편 장기기증 등록 후 사망한 이들의 안구는 1300여명에게 이식되어 광명을 되찾아주었으며 신장을 비롯한 간 심장 췌장 이식수술을 통한 생명나눔도 지속되고 있다.
▲입양운동:‘우리 아기는 우리 손으로 키우자’라는 취지로 시작된 입양운동은 해외입양의 부끄러운 현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입양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이끌어왔다는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입양기관들이 국내와 해외입양을 함께 담당하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입양만을 전담하는 기관으로 출발한 성가정입양원은 지난 10년 동안 1300여명의 아기를 국내가정에 입양보내는 결실을 거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외입양아 수가 많고 특히 장애아는 국내에서 외면당해 상당수가 해외로 입양가는 실정이다. 이는 양부모와 혈액형이 같은 건강하고 예쁜 신생아를 골라 비밀리에 입양하는 태도가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입양운동은 국내입양에 대한 이같은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과 함께 입양가정 모임 구성 정부의 입양정책 문제제기 등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