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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의인] 의정부시 성 베드로병원 윤강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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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윤 가이버’라고 부른다. 한때 TV 외화 드라마에서 인기를 끌었던 ‘만능 기술자’ 맥가이버에서 따온 이름이다.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성 베드로 병원의 윤강준(40·베드로)원장. 그가 ‘가이버’로 불리는 것은 만능의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가난한 환자들만 만나면 수술비는 물론 입원비도 마다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생활비까지 대주는 ‘만능 해결사’를 자처하기 때문에 병원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윤 원장이 중풍·디스크 환자를 무료로 수술해주는 것만 연간 10여차례. 그외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환자의 약값 진료비를 면제해주는 것까지 계산하면 실제로 윤 원장에게 무료로 치료받는 사람은 100여명에 달한다고 직원들이 귀띔한다. 또 어떤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가의 의료장비가 필요하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 장비를 구입 치료해주는 말없는 사랑을 실천한다고 알려준다.
얼마 전 허리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환자 김두식(63)씨는 “윤 원장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각 병실마다 몇명씩 있을 정도”라며 “세상에 이런 의사 선생님은 처음이다”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윤 원장은 이외에도 아무도 모르게 수백명을 뒤에서 돕고 있다.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는 얼굴과 이름도 일절 밝히지 않는다. 윤 원장의 손과 발이 되어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일용할 양식과 생활비를 전달해주는 ‘밀사’ 하태효(안토니오)씨만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병원 총무부장으로 근무하며 사랑의 밀사로 봉사했던 하씨에 따르면 현재 윤 원장이 돕고 있는 사람들은 인근 초등학교 결식아동 4명 각 수도회·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 15개소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못내는 중·고등학생 5명 소년소녀 가장 5명 장애인 가정 30여가구 의정부 일대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홀몸노인과 노인정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또 최근에는 신학생에게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윤 원장이 이들에게 연간 3000여만원의 거금을 전달하면서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태 6 3)는 성서말씀 때문이다. 그래서 몇년 전 윤 원장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마치고 전기 기술자가 된 한 청년이 윤 원장을 찾아와 ‘당신의 은혜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다’며 인사를 하는데도 윤 원장은 그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하씨는 “사실 윤 원장이 나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 외에도 본인이 직접 찾아가 도와주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윤 원장은 자는 사이에 몰래 들어와 사랑의 선물을 놓고 가는 ‘산타클로스’를 닮았다”고 말했다.
윤 원장이 이렇게 자선을 베풀기 시작한 것은 지난 92년부터. 당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벽제병원에서 근무하던 그는 군의관 시절 개신교 신자이던 동료 군의관이 쥐꼬리만한 당직비 5만원 가운데 10를 떼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올라 근무지 인근에 있는 ‘애덕의 집’(정신지체인 공동체)을 찾아 후원회원을 자청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나눔의 삶’은 한 사제를 만나면서 급진전됐다.
“아내와 함께 다니던 성당에서 만난 한 신부님이 저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 신부님은 저에게 ‘재산은 결코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이고 재산을 향한 인간의 욕심은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그때 우리 부부는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면 남을 돕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어요.”
또 93년 셋째를 출산하던 아내가 과다출혈로 만 하루 동안 사경을 헤매다 되살아나는 체험을 하면서 ‘세상 모든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도 계기가 됐다.
“사람이 태어나 하느님 품으로 돌아갈 때 필요한 것은 땅 한평 뿐이지 않습니까. 끝없는 욕심은 결국 해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웠습니다.”
이후 평화방송·평화신문을 통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으면 생활비를 부쳐주고 또 직접 동사무소와 학교를 찾아 가난한 사람들을 조사해 자선을 베푸는 일에 열중한 윤 원장. 그의 이런 삶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태 10 8)는 성서말씀을 신념으로 간직하고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윤 원장은 “단 한번도 ‘자선’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께 받은 약간의 재물을 단지 나누어 주었을 뿐입니다. 재물 자체가 결코 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라며 오히려 반박한다. 또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의사 본연의 임무이기에 어려운 환자의 치료비를 받지 않는 것도 결코 자선이 될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면 옷매무새부터 살핀다. ‘혹시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은 아닐까’라고 되뇌이면서.
“육체적 아픔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가 들어오면 그 사람의 아픔이 두배로 커 보여 나도 모르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그래서 윤 원장은 몇년전 입원했던 한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거리에서 풀빵장사를 하던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분이 디스크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단칸방에서 한달을 물만 먹고 지내다가 이웃 사람들에게 발견돼 저희 병원으로 왔는데 뼈만 앙상하게 남아 치료도 해보지 못한 채 하느님 품으로 갔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그분을 만났다면 살릴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그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픕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현재 운영하는 병원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윤 원장. 그의 얼굴에서 예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거리에 버려진 병자에게 다가가 상처를 치료하고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닮았다.【박주병 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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