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은 천년기를 마감하면서 한국 천주교회가 그동안 벌여온 각종 캠페인성 사회 운동들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짚어보는 특집기획을 2회에 걸쳐 마련한다. 한국 교회는 70∼80년대에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와 정의구현에 목소리를 냄으로써 사회운동을 주도했지만 이와 함께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기 위한 각종 캠페인성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 운동들 가운데 사회적인 반향을 크게 불러일으키면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것들을 중심으로 그 배경과 과정 의미를 살펴본다. 편집자
◆생명수호운동 : 낙태반대 100만인 서명운동 큰 반향
가톨릭 교회가 생명수호운동의 보루임을 인식시켜준 중요한 ‘운동’으로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잉태되는 순간부터 나이를 계산 태어나면서 아기 나이를 이미 한 살로 간주할 정도로 생명존중 의식이 높았던 우리나라지만 60년대 산업화 과정과 맞물린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공피임과 낙태가 이뤄지는 생명경시 현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73년 정부는 낙태를 사실상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제정했다.
가장 연약한 태아의 생명권부터 존중할 때 인간존중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당위성 속에서 한국주교단은 73년 모자보건법의 독소조항을 고발하는 사목교서를 발표한 데 이어 76년 인공임신중절을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생명존중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알리는 선언적인 의미가 컸다.
이와 함께 75년 주교회의 산하에 가정사목부를 설립하고 교구마다 행복한 가정운동을 조직 낙태와 인공피임을 막기 위해 ‘인간생명’회칙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자연가족계획 보급 활동에 들어갔다. 특히 춘천교구장이었던 고 박토마 주교는 가정사목부를 맡아 생명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82년에도 주교단은 ‘인구 증가 억제 대책에 대한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의 사순절 사목교서를 발표 불임시술과 낙태를 반대하고 자연가족계획을 보급하는 일이 교회의 가르침임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자연가족계획을 보급하는 것만으로는 편리한 것에 익숙해져가는 국민들의 의식 속에 파고들기 어려웠다.
80년대 이후 청소년 순결교육 낙태 관련 비디오 보급 혼인강좌 미혼모 시설 개원 등을 통해 낙태반대와 생명수호운동을 확산시키고자 했지만 급속하게 퍼져나가는 반생명적인 문화를 저지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92년 형법 개정안 제135조(낙태허용범위)가 입법 예고됨에 따라 실시된 낙태반대 100만 서명운동은 특히 교회 안팎에 생명수호운동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는 기폭제였다. 낙태반대 거리 캠페인 등은 소극적이던 생명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면서 이를 위한 조직화와 연대 홍보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됐다.
행복한 가정운동 중심으로 이뤄지던 생명운동도 한마음한몸운동 생명운동부 생명수호 대학생회 등이 생기면서 확산되어 나갔다. 91년 낙태방지 심포지엄을 계기로 탄생한 한마음한몸 생명운동부는 생명운동 관련 국제대회에 다녀온 뒤 낙태문제 뿐만 아니라 인공수정 안락사 복제인간 등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 전반에 관해 공부하고 신자 대중을 위한 참생명학교 8주간 강좌도 개설했다.
이와함께 생명운동가들은 생명운동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인 ‘인간생명’ ‘가정공동체’ ‘생명의 복음’ 등에 관한 회칙을 직접 공부하는 등 이론적으로 무장해 나갔다. 개신교와 합동으로 형법개정안 제135조 삭제를 위한 항의시위도 벌이고 낙태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마리아 콤플렉스’라는 무용도 공연했으며 10주된 태아 발 배지달기 운동도 적극 펴나가는 등 90년대 들어 생명운동이 폭넓게 이뤄졌다. 이에따라 주교회의는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해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 생명대회와 이어 지난 11월 대전에서 열린 한국 생명대회는 생명수호를 위해 죽음의 문화를 폭로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한편 생명수호를 위한 조직적인 연대의 틀을 만들었다.
죽음의 문화는 점점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해 가고 있어 생명운동을 전개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지만 이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교회의 사명이다.
이제는 죽음의 문화는 단지 낙태만이 아니라 안락사와 동성애 생명 조작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 도전에 교회가 어떻게 대응해서 생명의 문화를 가꾸고 확산시켜 나가느냐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