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조선 천주교회 최초의 신학교 배론 ‘성요셉 신학교’에 이어 부엉골 ‘예수성심신학교’가 최근 개교함으로써 조선 천주교회의 초석을 이룰 조선인 사제 양성의 맥이 이어지게 됐다.
파리외방전교회 로베르 신부는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의 명에 따라 1885년 10월28일 경기도 여주군에 신학교 교사와 사제관 겸 성당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오두막 2채를 건립했다.
블랑 주교는 이어 새로 입국한 마라발 신부를 신학교의 초대교장으로 임명했으며 마라발 신부는 즉시 부엉골에 부임해 소신학교를 개교함과 동시에 이름을 ‘예수성심학교’로 정했다. 현재 이곳에서는 지난해와 올해에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귀국한 한기근 외 7명의 신학생이 수학중에 있다.
마라발 신부는 “이처럼 궁벽한 곳에 신학교를 설립한 이유는 아직 박해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면 더 나은 장소로 이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855년 조선천주교회 최초의 신학교로 설립됐다 병인박해로 폐쇄된 배론 ‘성요셉 신학교’는 조선에서 가장 먼저 근대적인 교육과정을 개설된 곳이다.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에서 3칸짜리 초가집으로 시작된 배론 신학교는 10여년간 꾸준한 발전을 거듭해오다 서울포도청에서 파견된 포졸들에게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가 체포됨으로써 1866년 3월2일 폐쇄됐다.
배론 신학교는 제천 배론 교우촌에 장주기(요셉)가 제공한 3칸짜리 초가 살림집에서 1853년 조선 천주교회의 장상역할을 해온 파리외방전교회 메스트르 신부에 의해 시작됐다. 이곳에서는 1856년부터 한문·교리·일반상식 등과 함께 라틴어를 가르쳤으며 프티니콜라 신부가 교사로 임명된 1862년부터는 신학과를 개설해 수사학·철학·윤리·신학 등을 가르친 바 있다.
배론 신학교는 주거환경이 열악해 교사신부와 학생 모두의 건강이 악화돼 1863년부터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와 함께 다른 곳으로 옮겨보려고 하였지만 적당한 장소를 구할 수 없어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천주교회 안에서 신학교 설립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831년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이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면서부터였다. 파리외방전교회에서는 ‘파견된 곳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현지의 신자를 성직자로 양성해 선교사들이 이룩한 교회를 하루 빨리 현지인에게 넘겨준다’는 것을 창립정신의 하나로 정하고 실천에 옮겨왔다.【이주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