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은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그냥 막연히 두 손 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참으로 바라고 기다리는 미래는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성찰하며 새롭게 돌아서는 때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오늘을 더 잘 살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더욱이 올 대림절은 새 천년으로 넘어가는 희년을 기다리는 고개 마루입니다. 눈을 들어 주님을 뚜렷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주님 언제까지이옵니까?
첫 사람 아담이 하느님의 말씀을 어겼던 그 순간부터 인류는 구원을 간구하였습니다. 사람의 한삶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질병과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놓여나는 형제들이 가하는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구원을 찾고 기다렸습니다. 고통이 그치지 않기에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그 미래를 열어줄 분에 대한 갈망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처벌과 동시에 주신 하느님의 구원 약속에 희망을 걸었습니다.(문제 1)
구원의 빛이 메소포타미아 변두리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떠돌이 아브라함을 비추었습니다. 자식도 없고 늙은 그를 한 민족의 우두머리로 만들고 떠돌아다니는 그에게 정착할 땅을 주시어 당신 나라를 이루시려는 크신 하느님의 계획이 계약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아들 이사악에게서 약속이 실현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문제 2)
이집트에서 억압받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권능으로 해방시키시고 나아가 당신의 백성으로 삼는 계약을 맺어주셨습니다.(문제 3·4) 하느님의 자비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약속이 참됨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개인에게든 민족에게든 갖가지 고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하느님께 간구하고 그분의 자비와 구원을 체험하며 고백하였습니다.(문제 5·6)
하지만 그들이 하느님을 믿기보다 그 땅에 이미 있던 바알 신앙에 기울었을 때 백성들 사이에 불의와 부정이 만연했을 때 그들의 삶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께 미래를 맡기라고 일렀지만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과의 계약은 깨어지고 나라도 사라졌으며 땅도 잃고 형제들도 다 흩어졌습니다. 그 시련 속에서 이사야를 비롯한 예언자들은 새로운 계약을 맺으실 구원자가 오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문제 7·8·9·10)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 지 알 수 없었지만 약속에 충실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굳게 믿고 기다릴 것을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라지거나 성취되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유배에서 돌아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성전도 다시 짓고 성서도 편집하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이민족의 지배는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2세기에 하느님께 대한 근본 신앙마저 뿌리째 뽑힐지 모르는 극도의 곤경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현실을 일시에 뒤바꿔줄 특별한 존재가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민족의 지배에서 민족을 건져주실 분 나라를 견고하고 부강하게 해주실 강력한 구원자가 오실 터인데 그에 앞서 사자가 먼저 와서 준비시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문제 11·12)
흔히 그 기다림의 시기를 유다인들이 천지창조의 기원으로 삼았던 기원전 3643년부터 계산하여 대략 4000년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때가 차서 하느님께서는 나자렛의 한 처녀 마리아를 통해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문제 13) 그러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태어나셨을 때 그분을 알아본 이들은 극히 적었습니다. 성령께서 눈을 열어 주신 이들만이 그분을 구세주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문제 14) 그분이야말로 구약성서 전체가 증언했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약속을 온전히 성취하신 유일무이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인류의 모든 갈망이 이루어졌습니다.(문제 15)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구약의 예언처럼 세례자 요한이 와서 그분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문제 16) 예수님께서는 요한과 달리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며 놀라운 기적과 권위있는 말씀으로 그 나라가 왔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알고 받아들이며 믿는 이들은 여전히 드물었습니다. 마침내 그분은 권세있는 자들의 배척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분이 묻히신 무덤에서 부활의 빛이 터져나왔습니다. 부활로써 그분은 당신이 누구신지 온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느님 아버지께 순명하시고 인류를 사랑하신 그분은 참으로 구원자셨습니다.
다시 오실 그 날까지.
부활의 빛 속에서 성령을 통해 예수님께서 약속된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은 사도들은 자기들의 믿음을 고백하며 보고 들은 바를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응답한 신앙인들이 주님의 이름 아래 모여 새로운 공동체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통해 이 공동체 안에 이미 현존해 계신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며 장차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그 나라의 완성을 기다렸습니다.
마지막 날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성서의 표현은 하나의 비유적 표현입니다. 그 사건은 “눈으로 본 적도 없고 귀로 들은 적도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될 것입니다.(Ⅰ고린 2 9)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류의 역사를 궁극적으로 완성할 그 날은 분명히 오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때 하느님의 나라는 온전히 이루어지리라는 가르침입니다.(문제 18·19·20) 모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날 그때에 누리의 모습이 새로워지고 약속하신 새 하늘 새 땅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하고 간구하면서 희망 속에 사는 이들입니다. “이 희망은 닻과 같아서 우리의 영혼을 안전하고 든든하게 보호해주며 하늘 성전의 지성소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히브 6 19) “희망하는 인간만이 하느님께 자유로운 응답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오직 희망을 지닌 인간만이 아픔 속에 희망을 심을 수 있고 그 아픔 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으며 하느님의 새로운 탄생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습니다.”(심종혁 ‘내 삶의 모험이신 하느님’ 103쪽)
그 희망을 새롭게 불러 일으키는 대림절은 우리를 위해 오시는 예수님의 성탄을 잘 맞이하도록 회개하는 때입니다. 또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새롭게 의식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장차 영광 중에 오실 그분을 위해 우리 삶과 사회를 준비시키는 때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히브 13 8) 대림절은 깨어 다가올 기쁨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새롭게 시작하는 은총의 시기입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 2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