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저는 아직까지도 첫눈의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며 살고 있습니다. 첫 보좌 때 시작한 것인데 학생들에게 첫눈이 올 때 신부님께 처음으로 전화를 주는 선착순 10명에게는 피자를 사준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 해 겨울 첫 약속 후 손님 수녀님 주임 신부님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주임 신부님께서 받으시고는 저를 바꿔 주셨습니다. 전화기에서는 난리가 난 듯이 “신부님 첫눈이 와요! 저 아무개예요”라고 합니다. 전화를 끊자 연달아 전화가 왔습니다. 이름을 적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또 전화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아침은 수화기에서 불이 났고 아침식사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제 방으로 돌아와서 창문을 여니 포근히 내리는 예쁜 눈과 학생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왠지 이 겨울내내 내릴 것 같은 작은 착각 속에 첫눈의 아름다움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속초 겨울바다에 내리는 눈은 실로 환상에 가깝습니다. 세상이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 찰 것 같은 사랑의 첫눈 들뜨고 어린 마음으로 첫눈의 경험을 치른 첫 보좌 때의 기쁨이었습니다. 그 뒤 본당을 옮길 적마다 첫눈에 도취된 첫눈 중독자(?) 신부는 아직까지도 그 일을 그치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새 천년을 앞두고 마지막 겨울인 올 겨울에도 저는 어김없이 본당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그같은 첫눈의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시각은 새벽 3시30분입니다. 이 글의 제목을 ‘첫눈이 와요!’로 엄중히 채택하고자 하는 데에는 방금 전의 웃지 못할 사연 때문입니다. 미루었던 일을 하는 중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이 꼭두새벽에 웬 전화가…?’하고 의아한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수화기에서는 들뜬 학생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신부님 첫눈이 와요!” 본당 고3 학생이었습니다. 정말인지 확인하려고 커튼을 여니 비듬 같은 첫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귀여운 놈들…. ‘아무리 첫눈의 동반 중독자(?)여도 그렇지 새벽 3시에….’
본당 사목을 하면서 자주 마음에 상처입는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맑은 얼굴을 보면 또 다시 힘을 얻어 기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들이 다가오는 새 천년 교회의 일꾼이며 미래입니다. 그들에게 다시는 지난 세기의 슬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제 자신과 우리 어른들이 그들에게 참된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속의 모든 때가 흰눈에 덮였으면 싶은 첫눈 내리는 적막한 밤입니다. 시인 윤동주님은 눈에 대한 이같은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눈 오는 지도 중에서―
배광하 신부(춘천교구 갈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