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양업·최방제·김대건 신학생 마카오 입학
중국인 여항덕 신부가 1834년 조선에 입국한데 이어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중 최초로 모방 피에르 필리베르 신부가 1836년 조선에 입국 성직자 영입운동이 점차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모방 신부가 최양업·최방제·김대건 등 세 신학생을 발탁해 마카오로 보냄으로써 조선인 사제양성도 처음으로 시작됐다.
조선교회가 처음으로 성직자 영입운동에 들어갔던 것은 1790년의 일로 이승훈 권일신 등 당시 교회지도자들은 윤유일을 통해 중국 천주교 북경교구장에게 사제 파견을 요청 1795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입국해 서울 최인길의 집에서 거처하며 1796년 부활주일에 최초로 미사성제를 집전하는 등 사목활동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주 신부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자수 새남터에서 순교함으로써 조선교회는 34년간 ‘목자없는 교회’가 돼왔다.
따라서 이번에 여 신부에 이어 조신철 등의 도움으로 모방 신부가 입국함으로써 조선교회는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기틀을 세우고 선교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하지만 초대 조선대목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에 입국하지도 못한 채 1835년 10월20일 43세를 일기로 선종 2대 대목구장인 앵베르 주교의 조선입국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선교회는 또 모방 신부가 1836년 2월과 3월 7월에 걸쳐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을 신학생을 선발 라틴어를 가르친 데 이어 귀국하는 여 신부 일행과 함께 중국으로 보냄으로써 조선인 성직자가 탄생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최양업 등 신학생들은 중국대륙을 횡단 마카오에 들어가 파리외방전교회 극동경리부에 마련된 조선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울 예정이다. 【오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