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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속의 신문] 한국천주교회사(2) 조선인 사제 드디어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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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최초의 조선인 사제가 탄생했다.
김대건(25·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 8월17일 중국 상해 인근 김가항 성당에서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이로써 조선천주교회는 창립 61년 교구설정 14년만에 처음으로 조선인 사제를 배출하게 됐다.
김 신부는 “첫번째 조선인 사제가 되는 영광을 주신 천주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면서 “지금이라도 당장 조선땅에 들어가 박해받는 교우들과 함께하고픈 마음 뿐”이라고 서품소감을 밝혔다.
1821년 충남 솔뫼에서 순교자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난 김 신부는 1836년 경기도 은이 공소에서 모방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았다. 이후 신학생 후보로 선발되어 1837년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마카오에 도착한 김 신부는 1842년까지 메스트르 신부 등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들로부터 신학교육을 받고 1844년 만주 소팔가자에서 부제품을 받았다.

이날 서품식을 집전한 페레올 주교는 “김 신부의 열렬한 신앙심 솔직하고 진실된 성품 그리고 놀랄만큼 유창한 말솜씨는 신자들로부터 열렬한 존경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며 그의 인물됨을 높이 평가했다.
한편 김 신부의 서품소식을 전해 들은 조선의 신자들은 “조선교회의 오랜 염원이었던 조선인 사제 탄생이 드디어 이루어졌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 김대건 신부 사제서품의 의미와 과제 김대건 신부의 사제서품은 먼저 이방인이 아닌 조선인 사제에 의한 사목활동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조선에 천주교회가 창립된 이래 지금까지 조선교회를 헌신적으로 이끌어온 이들은 대부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사제였다. 하지만 이들의 숭고한 순교정신과는 별개로 조선의 실정에 어두운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전담케 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인 사제의 배출은 이방인에 의해 주도되었던 사목활동에 조선인도 같이 참여 조선교회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김 신부는 서양의 첨단학문을 직접 배우고 체득한 보기 드문 지식인이기 때문에 조선교회는 물론 조선사회 전체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 신부는 세계 정세에 비추어 조선이 문호를 개방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조선의 발전에 유익한 일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앞으로 보수적인 유교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김 신부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는 무엇보다도 조선교회의 재건이다. 수차례의 박해를 통해 조선교회는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있다. 모진 핍박을 감내하면서 김 신부의 서품을 진심으로 축하한 신자들을 하나로 묶는 일이야말로 김 신부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라고 볼 수있다.【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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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199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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