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4년
이승훈(베드로) 등이 1784년초 서울 수표교 근처 이벽(세자 요한)의 집에서
권일신 정약용 등에게 세례를 베풀고 신자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조선천주교회
가 창립됐다. 이는 이승훈이 지난해 북경 북당성당에서 조선인 가운데에서 처음
으로 그라몽(예수회)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귀국한 지 1년 만의 일이다.
이로써 이벽 등 실학자들의 주도로 1779년부터 천진암과 주어사 강학회 등
을 통해 ‘학문’ 탐구의 대상이 됐던 천주교가 신앙운동으로 발전하는 전기가
마련됐으며 조선에 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게 됐다.
조선천주교회는 또 외방전교회의 지원과 전교를 통해 탄생된 것이 아닌 자발적
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자생 신앙공동체의 탄생’이라는 의미도 아울러 지닌
다. 특히 이번에 천주교에 입교한 신자들은 진주 목사 정재원의 아들 4남 중 약
전·약종·약용 등 3형제를 비롯해 권철신·일신 형제 최창현 최인길 지황 등
양반 학자들과 중인인 역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수표교 공동체는 또 최근 2차로 최인길과 지황 등에게도 세례를 주고 1785
년 봄 서울 명례방 장악원 앞에 있는 역관 김범우의 집으로 이전하여 명례방공
동체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명례방공동체는 특히 최근 윤지충이나 최필공 김종교 홍익만 등 타지역의
학자들에게 ‘천주실의(天主實義’나 ‘칠극(七克)’ 등 교회서적을 빌려주고
교리를 전파하는 터전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명례방신앙공동체에서 집회를 갖던 신자들이 대거 체포되
는 ‘을사추조적발사건’이 발생 조선교회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천주교 신앙운동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지만 이전부터 천주교
를 ‘사학’으로 치부해오던 지식인들이 이를 명분삼아 ‘척사’를 공론화하고
있어 사태가 심각하다. [오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