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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속의 신문] 한국천주교회사(1)-천주교인 피의 박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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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천주교인들을 체포하고 처형하는 피의 박해가 시작됐다.
조선교회는 천주교 창설 이후 조선교구가 설정된 1831년까지 수차례에 걸친
박해를 통해 많은 교우들이 순교하거나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박해가 거듭될수록 신자 수가 늘어나는 기적을 보이며 교회발전의 굳건한 초석 을 쌓았다. 이 시기에 벌어진 주요 박해는 다음과 같다.
▲신유박해〓1791년 5월(정조 15년) 윤지충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이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운 이른바 진산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무군무부(無君無父)의 불효자라는 빌미로 시작된 박해는 11월 권일신과 이승 훈 등의 체포로 이어졌고 자수한 교인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포고문이
전국에 붙었다. 윤지충 권상연이 참수되고 많은 교우들이 배교 석방됨으로써
일단락됐다. 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었다.
▲신해박해〓1801년 12월(순조 원년) 천주교에 온건적이었던 정조가 승하한
후 노론벽파에 속했던 정순왕후가 남인과 천주교인들을 일망타진하고자 공식
박해령을 내렸다. 주문모 신부를 비롯해 권철신 정약종 황사영 등이 체포됐으며 가혹한 형벌 로 인해 처형된 자는 100여명 유배된 자는 400여명에 이른다. 이 박해로 교회 의 거물급 인사가 거의 사라지고 신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을해박해〓1815년 교우들의 재산을 노린 일부 백성과 지방관리에 의해 경 상도와 강원도에서 시작됐다. 모두 100여명의 교우가 체포되어 30여명이 순교했 을뿐 아니라 재산을 약탈당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 등 이 지역 교우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정해박해〓1827년 2월 전라도 곡성에서 천주교인 밀고 사건으로 시작돼 전 라도 전역으로 파급되었다. 이후 경상도 충청도 서울 등지로 확산된 박해의 결 과 500여명이 체포되고 15명이 옥사 또는 순교했다. 피해가 가장 큰 전라도지방 의 교회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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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199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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