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 천년기가 마무리되고 새 천년기가 열리는 전환기입니다. ‘전환
기’는 장소나 방향을 바꾸는 기간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행동과 관습을
하나씩 점검해 보면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싶으면 더 이상 미련을 가
지지 말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고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니다 싶으면 더 늦
기 전에 새로운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기간입니다.
전환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시대와 달리 무엇이 가장 옳은 길인
지를 분간하는 분별력이 요청됩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다양한 가치관이 혼재되
어 있고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시대풍조에서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를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마다 그 나름대로의 이유와 근거를 바탕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에 웬만한 지성인도 미래의 전망을 내다보기가 힘든 실정
입니다. 지금은 좋아 보이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으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불안하기만 합니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사회를 구성하는 든든한 기초로 여겨졌던 가정도 여
지없이 해체되고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만큼 권위를 존중받았던 학교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양심의 최후 보루라고 공인받던 종교계도 이
권 다툼과 주도권 싸움으로 멍들고 이그러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고만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새 천년기의 전환기에 서있는 우리의 숨김없는 모습입
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 사이에 폭넓게 형
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느냐에 있습
니다. 우리는 그 실마리를 ‘밀레니엄의 전환기’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가장 가까운 첫번째 밀레니엄 전환기는 1000년께입니다. 1000년이 되기까지
천년왕국설이 널리 퍼지기는 했지만 워낙 확고하게 자리잡힌 봉건왕조 시대라
사회적으로 큰 변동이나 움직임은 일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의 밀레니엄
전환기는 아주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통용되는 B.C.(기원전)나 A.D.(기원
후)는 바로 이 밀레니엄 전환기가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를 잘 시사해 줍니다.
인류 역사의 기준점이 되는 사건이 바로 이때 일어났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약
속이 연대를 표기하는 이 기호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하늘 높은 곳에만
계신 줄 알았던 하느님이 마리아(1)에게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
어나 우리와 함께 사셨다는 아주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 사상은 그 이후의 세계
를 확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물론 오늘날 학자들의 연구 결과 예수님의 탄생
연도는 0년이 아니라 기원전(BC) 6∼7년께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언제 태어났
느냐가 아니라 그분의 탄생이 인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점이 중요합니
다.
이 사건이 모두에게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당대 실력자들
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배척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베드로(2)와 요한
(3)과 같은 어부들이나 마태오(4)나 자캐오와 같은 세리들을 당신 제자로 불러
모아 새 세상을 여는 ‘복음 운동’을 펼쳐 나갑니다. 이 운동은 당대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지도층 인사나 종교계의 거물들에게는 불필요한 소요만을 일으키는
골칫거리에 불과했습니다. 급기야 예수님은 빌라도(5)의 재판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되고 맙니다.
이로써 모든 사건이 끝난 것으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지 사흗날에 부활하셔서 막달레나(6)와 토마(7) 사도 앞에 발현하십니다.
이 부활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복음운동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급기야 유다 대신 마티아(8)를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될 사도로 선출하고 예수님
이 바로 그동안 기다려 온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그리스도 공동체를 출범시킵니
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스데파노(9)가 보수적인 유다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진 후에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 온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면서 바오로(10)가 이방인의 사도로 큰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약성서 27권이 생겨납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제국의 대도시
를 주로 돌아다니면서 복음선교의 거점을 마련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
에 교회를 세우면 그 일대는 자연스럽게 복음이 퍼져 나가리라고 기대했던 것
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신생교회에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편지를 띄워
사목합니다. 이렇게 해서 데살로니카 전서(11)가 50년께에 쓰여진 이래 필레몬
서(12) 로마서(13) 등의 바오로 친서 7권이 작성되었습니다. 이후 서간문학은
꽃을 피워 다른 사도가 직접 쓰거나 사도들의 이름을 빌려서 쓴 베드로 전서
(14) 히브리서(15) 요한 Ⅰ서(16)와 같은 서간들이 생겨납니다.
신생교회에 띄운 사도들의 편지가 신약성서 27권 중에 3분의 2가 넘는 21권
을 차지하게 된 것은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신생교회에 자주 들를 수 없었던
사도들이 편지를 띄워 사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편지로 예수님의 일생을 다
일러주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받으면서부터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셔서 부활하실 때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복음서가 생겨납
니다. 70년께 마르코복음서(17)를 시작으로 요한복음서(18)까지 4권의 복음서가
각 교회 공동체에서 집필되고 교회의 탄생 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사도행전(19)
서부터 박해받는 교회에 희망을 불어넣는 요한묵시록(20)이 나옵니다.
이렇게 형성된 27권의 신약성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당시의 밀레니엄 분
위기를 물씬 느끼게 합니다. 신약성서는 오늘 우리에게 결단 내리기를 요청합니
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내 삶의 지침으로 삼아 신앙인으로서 철저하게 살
아갈지 아니면 예수님 당대의 지도층과 종교계 인사들처럼 예수님이 참된 길이
아니라고 내칠지…. 2000년 대희년의 기쁨은 바로 이런 결단에서 더욱 용솟음치
리라 희망해 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