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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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대희년 맞이 판공교리 (대림제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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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제3천년기를 여는 새 천년을 앞둔 설렘을 느낍니다. 무언가 새 로운 것이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 반 이제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
반이 어우러져 장밋빛 꿈을 피워 올립니다. 밀레니엄(1000년)을 두번 거치는 동 안 인간의 지식과 문명은 놀랍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발전의 뒤안길에서 시들어가는 꽃망울을 눈여겨 보지 못했습니다. 개 발이익을 위해서 무조건 파헤치는 바람에 생태계의 조화와 리듬이 깨어져 각종
공해와 기후변화라는 대재앙이 꿈틀거리며 인간을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인간사회 안에서도 개발이익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계층과 그렇 지 못한 계층 사이의 심한 불균형으로 생겨난 뒤틀림이 온갖 양상으로 벌어지 고 있습니다.

누구 한 사람 예외없이 모두 잘 살아야 된다는 외침은 이제 공허한 메아리 일 뿐이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제 구실을 하도록 잡아주는 온갖 윤리와 도덕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건물이 무너져서 죽든 말든 화마에
귀한 생명을 빼앗기든 말든 하늘을 날다가 뚝 떨어지든 말든 자기 자신만을 위 하는 극도의 이기주의가 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되다 가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 되고 말지도 모릅니 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천년기를 맞는 우리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허물어지기 전에 인간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나 하나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태도와 기회주의는 모두 청산하고 내 가 아니면 안된다는 적극적인 자세와 소신으로 새 천년을 여는 주춧돌을 하나 씩 새로 놓아야 합니다. 새 천년을 지탱할 수 있는 든든한 가치관과 덕목을 새 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새 천년을 맞는 우리 사회의 시대적 요청이자 예수님 오신 지 2000 년 대희년을 맞는 신앙인의 옹골진 다짐입니다. 새로 세우는 주춧돌은 천년이라 는 오랜 기간을 받쳐 줄 수 있을 만큼 튼튼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 미 그 주춧돌이 있습니다. 천년 동안 형성된 성서가 바로 그 주춧돌입니다. 오 늘날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73권의 신구약성서는 기원전 10세기께 문서로 정 리되기 시작해서 서기 100년께 마무리되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천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이루어진 대작업이니만큼 새 천년을 지탱하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신구약성서에는 천년이라는 기간을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간 시대상과 그 시대에서 올곧게 살아가려고 애썼던 사람 들의 몸부림이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매시대마다 그들의 몸부림을 샅샅 이 기록함으로써 오늘 우리 시대에까지 그 실상이 전해지도록 애썼던 성서기자 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성서는 천년이라는 기간을 두번이 나 견디어 냈습니다.
제3천년기를 앞둔 우리들의 눈에는 성서에 기록된 사건이나 사람들의 고민 이 이미 지나간 케케묵은 과거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무엇 때문에 오늘날 성서 를 펼쳐서 읽어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성서는 천년이라는 오랜 기간 을 거치는 동안 각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고 또 받아왔습 니다. 그러나 천년이라는 기간을 깊은 침묵으로 일관해 온 성서는 그 누구에게 도 속시원히 답변해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천년이라는 침묵의 깊이에 잠기려 는 이들에게 오랜 침묵 속에서 떠오르는 작고 여린 소리를 알아차리게 해주었 을 뿐입니다.
그 소리를 들었던 인물은 다 허물어져 가는 교회를 떠받쳐서 굳건하게 세웠 고 온갖 비리로 썩어들어가는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음으로써 세상의 빛 과 소금으로서 제 기능을 하게끔 되살렸습니다. 교회사에 나타난 성 베네딕토
성 프란치스코 성 이냐시오와 같은 인물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제 이 일은
새 천년기를 맞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입니다.
이번 대림 1주는 그 첫 걸음으로 구약성서를 눈여겨 보려고 합니다. 창세기 (1)와 출애굽기(2)를 비롯한 모세오경 5권과 여호수아(3)로 시작되는 전기예언 서와 이사야(4)·예레미야(5)로 시작해서 말라기(6)로 끝나는 후기예언서를 합친
예언서 21권과 시편(7)·아가(8)·전도서(9)를 포함한 성문서 13권과 집회서 (10)가 들어있는 제2경전 7권으로 이루어진 구약성서에는 메시아에 대한 오랜
기다림이 숨어 있습니다.

그 오랜 기다림의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진한 체취가 담겨 있습니다. 아담 (11)에서부터 시작된 인류 역사가 형제 살인을 저지른 카인(12)으로 말미암아
죄악이 퍼져 마침내 대홍수로 멸망하는 가운데 노아(13)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후 인류의 역사는 아브라함(14) 이사악 야곱(15) 등 이스라엘 성조들의 역사 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됩니다. 이집트에 내려가 한 가족이 민족 규모로 커진 이 스라엘 백성에게 모세(16)를 통해 구원의 손길이 펼쳐집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17)의 인도를 받아 약속의 땅 팔레스티 나를 차지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주변 국가의 침입을 견디다 못해 사무엘(18) 에게 요청해 사울과 다윗(19)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나 왕정은 또다른 시련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느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기보다는 군사력에 의존하거 나 이웃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바알 등의 이방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가 만연합니다. 이때 엘리야(20)와 같은 예언자가 나타나 우상을 척결하고 야훼
신앙을 굳건하게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가 나와야 할 때입니다. 야훼 하느님만 을 믿고 따르지 못하도록 하는 물신숭배며 쾌락 지상주의를 모두 몰아내야 할
시점입니다. 새로운 천년기를 앞두고 아기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우리 신 앙인들에게서부터 이 일은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천년의 빛은 준비 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서 환히 비쳐 나오리라 희망합니다.

“우리 앞길은 당신의 빛을 받아 환합니다.”(시편 36 9)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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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6장 10절
정녕 주님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주님의 빛으로 저희는 빛을 보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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