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1학년 때 동창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수동 타자기 몇 대가 전부였습
니다. 2학년이 되자 전동 타자기가 등장하였고 3학년 때에는 컴퓨터가 간간이
눈에 띄더니 대학원에 와서는 기숙사 각 방에 있는 대다수의 신학생들이 개인
컴퓨터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저는 그 이름도 유명한 컴맹 원시인입니다) 그
뒤 모든 것이 빨라졌고 편리해졌습니다. 강의 내용도 필기할 필요 없이 한두 주
일 후면 녹음된 내용이 강의록이 되어 제 손에 쥐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식사 후 삼삼오오 모여 산책로를 담소
하며 걷던 아름다운 산책 문화가 사라진 것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명
령받은 병졸 마냥 식사 후 저마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와 이야기를 합
니다. 분명 모든 것이 빨라져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할텐데 취미활동도 줄어들
고 많은 모임에도 예전같이 모이질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입에서
는 이구동성 바쁘다는 말만 늘어갔습니다. 사제가 되어서도 모두가 바쁩니다.
또 되풀이하는 똑같은 말은 컴퓨터와 인터넷 정보화에 눈이 트여야 한다고 합
니다. 그런데 이상하리 만치 누구하나 그 말에 반론을 펴는 이는 없습니다.
저는 컴맹 신부입니다. 그런데 제 자신에게는 분명한 제 주장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반동의 역사였습니다. 어느 한 이념이 사조가 지금까지 전부였던
때는 결코 없었습니다. 중세 신 중심의 문화가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이치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21세기는 기계·물질화된 정보화
세계가 될 것이라고 주장들 하지만 분명 새 천년기는 탈 정보화시대로 이어져
기계에 염증을 느껴 인간정신을 추구하는 선각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
로 그때를 대비한 사목 교육이 필요합니다. 컴퓨터를 잘하는 사목자도 필요하지
만 새 세기에는 인간정신을 심도있게 탐구하는 사목자도 필요한 것입니다.
속세를 떠난 은둔자의 삶을 자주 꿈꾸곤 합니다. 프랑스 떼제공동체의 사목
을 진심으로 열망하고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이 사색의 게으름을
피워야겠습니다. 모두가 바쁘다 할 때 정말 바쁘지 않아 보이는 이 시대에 게으
름뱅이 신부도 여러명 있어야겠습니다.
“데카르트가 자신의 행로를 좌우할 예언적인 꿈을 꾼 것도 이를테면 무위
도식 상태에서였고 뉴턴은 나무 밑에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 안에 각각 드러
누운 상태에서 큰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플라톤이 아카데모스 정원에서
벗들과 더불어 사색을 한 일도 우리 시대가 말하는 소위 맹렬한 생활 따위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의 ‘대화’를 보아도 하나 같이 한가로운 이야기들뿐입
니다.”
‘게으름의 찬양’을 외쳤던 자크 러클 레르크 신부님의 말씀입니다.
배광하 신부(춘천교구 갈말본당 주임)